OVERCOMING GRIEF
I Felt a Connection
내 인생을 구해 준 우정
Guideposts 2024 | 2
OVERCOMING GR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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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elt a Connection
내 인생을 구해 준 우정
I was so isolated in grieving my son’s death.
Then a stranger reached out
아들의 죽음으로 비통할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로웠다.
그때 낯선 이가 손을 내밀었다.
By LORI DURHAM, Brunswick, Georgia
로리 더햄 조지아주 브런스윅
I pulled up to my house with a sigh of relief. It had been another tough day at school.
I teach high school English. I love reading and writing and language and literature, but lately I had been going through the motions. A stack of papers awaited my grading pen on the car seat beside me. Just the thought of tackling those papers was exhausting.
Eight months earlier, my 27-year-old son, Russell, had died unexpectedly. His car had caught fire. The details were too awful to contemplate. The tragedy was so horrific, it had blotted out my whole world.
I was back at work now, but my job was the only thing that had stayed the same in my life. I was a shell of my former self. Listless. Swallowed by despair. I barely got out of bed each day.
I was seeing a psychiatrist, which helped a little, but I was still floundering. My husband, John, and my daughter, Allison, who was in high school, struggled too. People at church were praying for us. I was grateful, but I didn’t feel any different.
Coming home each day was a relief, but there was no escape there either. So many reminders of Russell. So many regrets about a future I would never have with him.
I honestly did not know how I was going to get out of this pit. I was mad at God. I didn’t blame him exactly. I just…it’s hard to put into words. I felt as if he was off somewhere and I was all alone. Trust was gone.
The only prayer I could muster was “Help!” It didn’t seem as if God was listening.
I picked up the mail on my way inside. I noticed a letter-size envelope addressed to me in neat handwriting. The return address was Searcy, Arkansas. I didn’t know anyone there. Was it one of those junk mail pieces made to look personal?
Whatever it was, I didn’t want to deal with it right now.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 앞에 차를 댔다. 학교에서의 힘든 하루가 또 지나갔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읽기와 쓰기, 언어와 문학을 사랑하지만, 요즘에는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조수석에는 페이퍼 한 무더기가 채점을 기다리고 있다. 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지쳤다.
8개월 전, 27세의 내 아들 러셀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자동차에 화재가 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너무 끔찍해서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 지독한 비극은 내 세상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이제 직장으로 복귀했지만, 내 인생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직 직장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내가 남긴 껍데기에 불과했다. 무기력했고, 절망에 사로잡혔다. 매일 침대를 겨우 빠져나왔다.
정신과 상담이 조금 도움은 되었지만, 여전히 허우적거렸다. 남편 존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앨리슨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교회 성도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했다. 감사했지만 변한 건 없었다.
매일 집에 오는 일이 위안이 되었지만, 거기도 탈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러셀을 생각나게 하는 추억이 너무나 많았다. 아들과 결코 함께 그릴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후회가 밀려왔다.
이 수렁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솔직히 몰랐다. 하나님께 화가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마치 하나님은 어디 가 버리고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뢰는 무너졌다.
용기를 그러모아 겨우 하는 기도라고는 “도와주세요!”뿐이었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우편물을 챙겼다. 깔끔한 글씨체로 내 앞으로 온 편지 봉투가 눈에 띄었다. 반송 주소는 아칸소주 서시였다. 그곳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적인 편지처럼 보이게 만든 광고물인가?
그게 뭐든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Part of the reason I was so exhausted all the time was the energy it took just to do simple things like errands. We live in a small town. I always ran into someone I knew. If they had heard about Russell, they’d ask how I was feeling. If they hadn’t, they’d say, “How’s Russell doing these days?” He’d been living in Savannah when he died. News of his death was still making the rounds.
Sometimes I found myself in the awkward position of comforting someone who’d just learned what happened. I never knew what to say.
My only mildly therapeutic thing was a blog I’d started two years before Russell died. It had 36 followers, mostly family and friends. I used it to sharpen my writing skills. It was pretty mundane, but writing had always been a creative outlet for me.
After Russell died, I had written a tribute about him. Getting the words out had felt cathartic. I hadn’t written much after that.
I dumped the mail on the counter and looked more closely at that handwritten envelope. It wasn’t junk mail. A real pen had written the address.
Curious, I opened the envelope.
I was not prepared for the letter I found inside:
Lori, You don’t know me, but I happened upon your blog entry that you lost your son, Russell, and I wanted to express my condolences. I felt a connection to your blog entry because I lost my 24-year-old son, Jared, in February. I have had similar encounters like you spoke about and have been on the verge of tears many times when I have had conversations with people. God brings comfort—but there is an empty spot in my heart because I miss Jared so much. I know you understand. I don’t normally send cards to strangers, and I’m sure you don’t normally receive them, but I felt as though I should reach out to you. I will pray for you as you begin a new school year and continue to adjust to a “new normal” of life without Russell.
The letter was signed by a woman named Patti Chapman. She was a preschool teacher in Arkansas. She said she’d stumbled on my blog while looking for something else online.
My heart went straight out to her. I knew nothing about the circumstances of her son’s death. Yet I shared every single one of her feelings. Tears. Awkward conversations. An empty spot in the heart. That was me.
내가 늘 지쳐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간단한 일상적인 일을 하는 데 드는 에너지 때문이었다. 우리는 작은 동네에 살았다. 늘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 그들이 러셀 소식을 들었다면 나에게 어떠냐고 물을 것이다. 듣지 못했다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요즘 러셀은 어떻게 지내요?”
러셀은 사망 당시 서배너에 살고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가끔 러셀의 소식을 방금 막 들은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는 유일한 일은 러셀이 떠나기 2년 전에 시작한 블로그였다. 팔로워가 36명이었는데,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들이었다. 쓰기 실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재미없는 일상의 내용이었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늘 창작 욕구를 배출하는 수단이었다.
러셀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에게 바치는 헌사를 썼다. 글로 표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후로는 글을 자주 쓰지 않았다.
우편물을 카운터에 던지고는 손글씨 봉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광고물이 아니었다. 주소는 진짜 펜으로 쓰여 있었다.
호기심에 봉투를 열었다.
안에 든 편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로리, 당신은 저를 모르실 거예요. 우연히 당신의 블로그에서 아들 러셀을 잃었다는 글을 보고 조의를 표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일종의 유대감을 느꼈어요. 저도 올해 2월에 스무네 살 아들 제러드를 잃었거든요. 저도 당신처럼 사람들과의 어색한 만남을 겪었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울음이 터질 뻔한 적도 수없이 많았어요. 하나님이 위안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구멍이 있어요. 제러드가 너무 그립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이해하시겠죠. 전 낯선 사람에게 카드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평소 그런 카드를 받지 않겠죠. 그런데 당신한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 학기를 시작하는 당신을 위해 그리고 러셀이 없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실 수 있길 기도할게요.”
편지 끝에는 패티 채프먼이라는 여성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아칸소에 사는 그녀는 유치원 교사였다. 온라인에서 다른 걸 검색하다 우연히 내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바로 마음이 갔다. 그녀의 아들이 사망한 정황과 관련해서 아는 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가 공감이 되었다. 눈물. 어색한 대화들. 가슴속에 난 구멍. 바로 나였다.
I wrote back that evening, by hand. I told Patti how grateful I was to hear from her. Except for John, she was the first person I’d encountered after Russell’s death who actually understood what it’s like to lose a child.
I told her a little about Russell, how much I missed him and how his death had plunged me into depression and doubt. I also took a risk and admitted I was struggling with faith. “It’s hard to pray,” I wrote. “God feels far away.”
I included my email address, in case Patti wanted to reach out to me online.
She emailed me the day she got my letter. “It’s such a relief to find someone who’s going through this too,” she wrote.
Then she shared a piece of wisdom: “I understand why you find it hard to pray. What helps me is asking God to use Jared’s death and my grief for some larger purpose. I try to focus on God using my family’s experience to help someone else.”
I stared at those words on my computer. They seemed to speak to something deep inside. Could I do that? Trust God enough to envision him using my family’s tragedy for good?
Patti and I wrote often after that. I reached out to her as Russell’s birthday approached, and she did the same for Jared’s. I had been dreading our family’s first Christmas without Russell. Knowing Patti also found the holidays hard helped immensely.
“I’m struggling with guilt,” I wrote to Patti one day. “I wish I could take back all of the times I scolded Russell. I wish I had visited him more often in Savannah. I am so full of regret.”
Patti responded immediately: “I’ve had all those same feelings. I wish I’d hugged Jared more. Nagged him less. What helps is turning my feelings into something more positive. I try to be kinder with my loved ones. I think Jared would appreciate that.”
It was another amazing insight. I decided to try adopting some of Patti’s positive habits. I trained myself to focus on happy times with Russell, not just regrets or sadness. One memory in particular stood out. Just thinking about it filled me with an emotion I hadn’t experienced in a long time: joy.
It was from when Russell was little and I’d been teaching him how to float on his back in the pool. We were in Florida at the time. The sun had gone down, and the stars were out.
I held him in the water and whispered encouraging words in his ear, telling him I was proud of him for learning a new skill. Slowly his body relaxed, and I took my hands away. He was floating!
That memory, and others like it, became a source of abiding comfort.
그날 저녁, 나도 손글씨로 답장을 썼다. 그녀의 편지를 받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전했다. 남편을 제외하고,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아이를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패티가 유일했다.
나는 그녀에게 러셀에 대해 조금 이야기했다. 아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아들의 죽음으로 내가 얼마나 깊은 우울과 의심에 빠졌는지.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고백했다.
“기도하기가 힘들어요.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신 것 같아요.”
이렇게 썼다.
패티가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메일 주소도 적어 넣었다.
그녀는 내 편지를 받은 날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라요.”
그녀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이런 지혜로운 말도 해 주었다.
“기도하기 힘들다는 말 이해해요. 제 경우, 아들의 죽음과 이 비통한 마음을 더 큰 목적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도움이 되더군요. 하나님께서 제 가족의 비극을 누군가를 위해 써 주시는 데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모니터 위의 그 말을 한참 바라보았다.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에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내 가족의 비극을 선한 곳에 쓰시는 것을 그릴 수 있을 만큼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패티와 나는 이후로 자주 메일을 주고받았다. 러셀의 생일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에게 연락했고, 제러드의 생일이 다가올 때 그녀도 나에게 연락했다. 러셀 없이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가 몹시 두려웠다. 패티 역시 명절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힘을 얻었다.
“전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요. 러셀을 야단쳤던 그 모든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어요. 서배너에 사는 러셀을 더 자주 찾아갈걸. 후회로 가득하답니다.”
어느 날 패티에게 이렇게 썼다. 패티에게서 곧바로 답장이 왔다.
“저도 당신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어요. 제러드를 더 자주 안아줄걸. 잔소리를 덜 할걸. 이 감정들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니 도움이 되더군요.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 주려고 노력해요. 제러드도 그 점을 고마워할 거라 생각해요.”
또 하나의 놀라운 통찰이었다. 나는 패티의 긍정적인 습관들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그저 후회나 슬픔이 아닌 러셀과의 행복한 시간들에 집중하는 훈련을 했다. 어떤 추억 하나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 추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바로 기쁨이었다.
러셀이 어렸을 때였고, 나는 아이에게 수영장에서 위를 보고 뜨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플로리다에 있었다. 해는 지고, 별이 떴다.
물속에서 아이를 잡고, 그의 귀에 대고 격려의 말을 속삭였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서서히 아이의 몸이 이완되자 아이의 몸에서 손을 뗐다. 성공이다!
그 기억 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기억들은 변치 않는 위로가 되었다.
In a subsequent letter, I told Patti about another difficult experience. “In the first weeks after Russell’s death, I had terrible insomnia. I’d lie awake half-expecting him to walk through the front door as if nothing had happened. It’s not so vivid now, but it still hurts how much I miss him.”
Right away, Patti answered that she too felt overwhelmed at the idea that she’d never see Jared again. She was helped by an unexpected gift: a card with a wise writing given to her by one of her students. The card said, “Don’t worry that you’re not strong enough before you begin. It is in the journey that God makes you strong.”
Not long after, a package arrived in the mail. It was a box of Scripture cards with inspiring verses. “For when you need it,” Patti wrote in a note accompanying the box.
Looking at those cards became another of my positive habits.
Patti told me that one of her favorite hymns, “Great Is Thy Faithfulness,” had been sung at Jared’s memorial service. “The lyrics ‘Morning by morning new mercies I see’ still minister to me,” she wrote. “I’m so glad there are God’s new mercies each day to help us deal with new challenges.”
It was obvious what Patti’s letters were for me. They were new mercies from God. His faithfulness truly was great. I owed it to God to work on my own faith.
Slowly I made progress out of my pit of despair. I learned to look for God in the midst of sadness. I allowed myself to trust that maybe God understood what I was going through. I could trust Patti, I told myself. Maybe I could trust God too.
Patti and I have been friends for more than a decade. Until I wrote this story and we were photographed together for it, we’d never met in person. Yet in some ways, Patti knows me better than anyone except for my family.
“Struggles in life make us stronger if we react to them in the right way,” she wrote to me once. “If we do not see that suffering in life has purpose and meaning, we are likely to fall into despair.”
Those words have been a guiding light for me. Turns out, God was listening when I uttered those desperate prayers for help after Russell died. He sent me Patti. He knew what he was doing when he directed her to my obscure blog.
My grief for Russell is not gone. I struggle every day, a struggle that will probably last the rest of my life.
And yet, because of Patti, I know God is with me in the midst of my struggle. I see his new mercies every day. I thank him for each one.
Especially for the friendship that changed—and helped save—my life.
그다음 편지에서 나는 또 다른 어려운 점을 토로했다.
“러셀이 세상을 떠난 첫 몇 주간은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아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반쯤은 바라면서 눈을 뜨고 누워 있었어요. 지금은 그때만큼 생생하지 않지만 여전히 아프도록 아들이 그리워요.”
곧바로 패티는 제러드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견디기 힘들었다고 답장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선물 덕분에 도움을 받았다. 학생이 준 지혜로운 글이 적힌 카드였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당신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강하게 만드실 테니까요.”
얼마 후,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영감을 주는 성경 구절이 적힌 카드 상자였다. 상자 안에 패티가 쓴 카드도 있었다.
“필요할 때 보세요.”
그 카드들을 읽는 것도 내 긍정적인 습관 중 하나가 되었다.
패티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인 ‘오 신실하신 주’를 제러드의 추도식에서 불렀다고 말했다.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라는 구절이 여전히 저에게 도움이 된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자비가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정말 기뻐요.”
그녀는 이렇게 썼다.
패티의 편지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새로운 자비다. 그의 신실하심은 진정 위대하다. 내 신앙을 지킨 것은 모두 하나님 덕분이다.
나는 서서히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다. 슬픔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웠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이해하실 거라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 패티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나 자신한테 말했다. 어쩌면 하나님도 신뢰할 수 있을 거야.
패티와 나의 우정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이를 위해 함께 사진을 찍기 전까지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패티는 내 가족을 제외하고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올바른 방식으로 대응하기만 한다면 삶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요. 그 고통이 가지는 목적과 의미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망에 빠지겠지요.”
한번은 그녀가 이렇게 썼다.
패티의 그 말은 나의 등대가 되었다. 러셀이 떠나고 나서 도와달라는 그 간절한 기도들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에게 패티를 보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알려지지 않은 내 블로그로 패티를 이끄셨다.
러셀을 잃은 비통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몸부림친다. 어쩌면 이 몸부림은 평생 갈 것이다.
하지만 패티 덕분에 몸부림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는 매일 하나님의 자비를 본다. 그가 베푸시는 자비 하나하나에 감사드린다. 특히 내 인생을 바꾸고, 내 인생을 구해 준 우정을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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