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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떨림으로


Guideposts 2024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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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4 | 3

건강한 떨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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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창을 본다. 파르르 떨리는 찰나의 긴장이 영원 같다.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심정으로 창을 던지는 그는 온몸의 힘을 실어 쏘아 보낸 소망이 도달할 곳을 응시한다. 어디에 가닿을지 알 수 없기에 더욱 가슴 뛰는 순간이다. 창을 던지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김종민 감독의 매일은 그렇기에 생기롭다. 부지런히 여러 갈래의 길을 내며 일구어 온 그의 일과 삶, 그 속에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될 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고유한 입지를 다져 가고 계신데요. ‘n잡러’로서 일상이 매우 분주하실 것 같습니다. 하루 루틴이 어떤가요?


빡빡하죠. 보통 아침 8시 30분쯤 기상해서 성경을 읽어요. 폰을 손에 들면 습관적으로 SNS 어플을 누르게 되잖아요. 그래서 SNS 어플을 누를 때마다 바로 성경 어플을 눌러서 말씀을 읽도록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1시간 즈음 말씀을 묵상하고, 교회 팀원들과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뉴스들을 접하죠. 그런 후 일주일에 나흘은 기업(포스코인터내셔널)과 인천시장애인체육회에 소속된 ‘운동선수’로서 경기장에 출근해서 훈련을 해요. 퇴근 후에는 ‘강사’로서 활동을 하는데 기관에서 하는 강의는 3개월 동안 주 1회, 이런 식으로 진행해요. 그 외 특강이나 북토크 같은 일회성 강연을 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일 마치고 친한 장애인분이 병원 가실 때 도움을 드리기도 해요. 강의 일정이 없는 날에는 보통 상담을 잡죠. ‘상담가’로서 일하는 시간은 주로 늦은 밤이에요. 내담자분들이 직장에서 퇴근한 이후에 상담을 진행해야 하니까요. 원래대로면 1회기에 50분씩 진행해야 하지만 저는 50분 안에 끝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담자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1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곤 하죠. 그래도 되도록 새벽 2시는 안 넘기려고 해요. 그리고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 수정을 하고 필요한 경우 미팅도 하면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일을 진행하죠. 그렇게 일과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어 7시간 정도 수면을 취해요. 보통은 이러한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지만, 여자친구가 있으면 거의 70퍼센트 여자친구 스케줄에 맞춰요.(웃음)



운동선수, 영화감독, 강사, 상담가… 하는 일에 따라 태도도 조금 달라지지 않나 싶은데요. 각각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시는지요?


당연히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죠. 운동선수로서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요. 일단 잘 챙겨 먹으려 하죠. 그리고 되도록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요. 웜업(warm-up)을 위해서요. 그리고 설정해 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죠. 스포츠는 승부 싸움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길까’에 몰두하게 되죠. 그런 면에서 크리스천이 운동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이기려면 좀 이기적이어야 하니까요. 훈련을 할 때도 제한된 환경에서 실력을 쌓아 가려면 남보다 나를 우선으로 챙길 수밖에 없어요. 요즘엔 좀 더 양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요.(웃음)

영화감독 김종민으로서는 독립 영화를 할 때와 상업 영화를 할 때의 태도가 달라요. 독립 영화는 주인공이나 스토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요. 한마디로,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장애인, 여성, 이주민 노동자 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영화를 만들어 왔어요. 그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인이 되어 전하려니 태도가 진지할 수밖에 없고 마음 또한 진심일 수밖에 없죠. 반면 상업 영화는 ‘열심히’만으로는 안 돼요. 무조건 ‘잘’ 찍어야 하거든요. 영화가 망하면 안 되니까요. 수억의 예산에 수백 명 스텝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자유로울 수 없죠. 어떤 영화를 찍느냐에 따라 영화감독의 태도 가 달라지는 이유예요.

상담가 김종민일 때는 ‘이분의 이야기를 잘 듣고 싶다. 이분 안의 이야기를 잘 끄집어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임해요. 이때의 저는 내담자의 마음 근육을 길러 주는 트레이너인 거죠.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 주고, 또 그분이 마음 상하지 않게 팩트를 우회적으로 잘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말도 천천히 하게 되고, 웃음 띤 얼굴로 온화한 표정을 짓게 되죠.



작년에는 운동선수 김종민으로서 오랫동안 꿈꿔 오던 금메달을 거머쥐셨습니다.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창던지기’ 종목 금메달리스트가 되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무척 기뻤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니까요. 사실 재작년에 정말 안타까웠거든요. 물리적으로 충분히 던질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해서 제 기록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얻었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많은 노력을 쏟았고 마인드 컨트롤도 잘하려고 애썼죠. 메달을 따고 나서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걸 또 한 번 느꼈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놓지 않으셨어요. 축구에서 수영으로, 마침내 육상 필드로 종목을 바꾸셨는데요. 선택과 집중을 위해 매진한 ‘창던지기’ 종목의 매력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원래 하고 싶은 종목은 야구였어요. 그래서 초등학생 때 소년 야구단에 입단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죠. 세 살 때 사고로 얻은 뇌병변 편마비 장애 때문에요. 왼쪽 손과 발이 불편하긴 하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어요. 그 후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학교 간의 대회에서 왼발 슛 찬스를 놓친 뒤로 좌절을 겪고 말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동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수영을 시작한 것은 허리 디스크 재활을 위해서였는데, 서른 살에야 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는 즐거움이 컸죠.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취미로 수영을 하는 제가 직업으로 수영을 하는 선수들을 이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인천 장애인 육상팀이 결성된다는 소식을 들었죠. 제 어깨 힘이 좋다는 걸 아는 친구가 육상으로 종목을 바꿔 보라며 적극 권유를 했어요. 

창던지기는 직관적인 매력이 있어요. 날아가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보이잖아요. 게다가 굉장히 과학적인 운동이에요. 좌우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창을 던질 때의 느낌과 떨림이에요. 손가락에 탁 걸리는 느낌이 들면서 창이 날아가거든요. 그렇게 떨리면서 날아간 창이 한 번에 꽂힐 때 오는 쾌감이 있어요.


창의 떨림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겠어요.


맞습니다. 던진다는 건, 놓는다는 의미죠. 던지기 전까지는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을 다했다면, 던진 뒤에는 놓아야 하는 거예요. 이때 내가 던진 창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해요. 던진 다음에 그 창을 바라보는 것까지가 하나의 스텝인 셈이죠. 떨리며 나아가는 창을 바라보면서 지난날 쏟았던 최선의 노력을 되짚어 보는 거예요. 마치 선교지에서 수일 동안 복음의 씨앗을 뿌린 뒤 선교를 마무리하기 전, 지난 선교 기간을 돌아보며 대화를 나눌 때 떨림을 느끼는 것처럼요. 저는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떨림’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창던지기는 시각적·물리적으로 창을 던지는 방향이 하늘이거든요. 그래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죠. ‘주님, 저는 던졌습니다. 이제 주님이 책임져 주세요.’



창던지기의 궁극은 선교적 사명과도 맞닿아 있군요. 그동안 교회에서 해외 선교도 많이 나가셨잖아요. 해외 선교를 나가게 된 첫 계기는 무엇인가요?


거룩한 부담감이랄까요. 그동안 교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이제 해외 선교지도 섬길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내 선교는 열심히 했지만 해외 선교에 나간 적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그런 부담을 느꼈어요. 해외 선교를 나가려고 처음 마음먹었을 당시 제 수입이 넉넉지 않아서 재정적인 부담이 컸어요. 자비로 선교 경비를 부담하자니 가장 가까운 국가를 찾게 되었고, 오랜 세월 대만 영화에 부채 의식을 갖고 있던 터라 대만 선교를 지원했어요. 지금은 일본 영화를 좋아하지만, 한때 큰 수혜를 입은 대만 영화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갚고 싶었거든요. 더구나 저희 교회 대만 선교의 좋은 점이 한 교회를 지속적으로 섬길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한 교회를 마음에 품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한다는 게 귀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복합적인 고민 끝에 첫 선교지를 대만으로 택했어요.(웃음)



거룩한 부담감 또는 당위에 의해 시작한 선교였지만 연차와 경험이 쌓이면서 선교를 통해 좋은 영향 또는 변화를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비단 선교만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크게는 기독교를 통해서 제 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특히 선교를 하면서 영혼을 향한 마음이 좀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어느 한 영혼이 나를 통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코이노니아를 알게 되고, 주님께 정착하게 되는 귀한 일을 경험했으니까요. 선교를 통해 관계 맺은 영혼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감사하죠.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하셨어요. 과거에 비춰 봤을 때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친척 형들이 저를 “애자야, 애자” 하고 불렀어요. ‘장애자’라는 말을 그렇게 부른 것인데요. 장애자의 ‘자’가 놈 자(者)잖아요. 요즘은 장애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만 봐도 변화가 느껴지죠. “애자야, 애자” 하고 안 부르는 게 어디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죠.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그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그때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시 상황이나 시대 정신이 그랬던 거라고 생각하죠. 어쨌든 이런 단어 하나만 봐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걸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의무가 아니더라도 건물에서 현관문의 턱을 없애는 등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적용해요. 손가락 한 마디의 턱만 있어도 휠체어가 갈 수 없거든요. 무엇보다 제가 기쁘게 여기는 점은 장애인들이 바깥 출입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에요. 그사이 장애인 인구가 늘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동안 안(못) 나오던 장애인들이 나오는 거죠. 바깥으로 나오는 걸 넘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주장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고무적이에요.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면서 고되고 힘든 순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장애인들끼리 하나가 되지 못해 안타까웠어요. 저마다 체감하는 불편과 어려움이 다르기에 각자의 장애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거든요.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아무렇게나 뒤섞인 하나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 이야기하듯, 각각의 음을 내는 악기의 현처럼 각 개인이 독립적으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소리를 내어 화음을 이루는 하나를 말하죠. 그러한 하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만든 데뷔작이 바로 단편영화 〈다리 놓기〉예요.



당시의 갈망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군요.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이 연대할 때 핵심이 되어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랑’이요. 사실 사랑이 있다면 정부의 시책을 두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을 거예요. 남성 장애인들 가운데 ‘중증 여성 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진 시책에 불만을 품는 경우가 있어요. 장애인은 다 똑같이 힘들다는 이유에서죠. 하지만 중증 여성 장애인이라면 상대적으로 더 힘들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한편 지적 장애인이나 정신 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잖아요. 이들에게는 정신적인 소외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물리적인 혜택이 더 주어져요. 이러한 부분에서도 다른 장애인들의 불만이 발생하죠. 사랑이 있다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누굴까’를 먼저 생각하고 수긍할 수 있을 거예요.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 있었을 텐데요. 그 다짐은 무엇이며,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심플해요.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오래 살아남자. 제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최선은 다한 것 같아요.(웃음)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의 제작부 막내 스태프로 영화판에 첫발을 내딛은 뒤로 10편에 달하는 단편영화를 꾸준히 만들었어요. 그중 〈하고 싶은 말〉은 ‘토론토 스마트폰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초청을 받았고요. 지난 시간 제가 만들어 온 영화 속에 그야말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아냈어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늘 기도하고 결정했기에 후회로 남는 것도 없어요. 다만 고지식하게 고집부린 교만(영화감독은 영화만 잘 찍으면 된다)은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10년 넘게 붙들고 있던 장편 시나리오가 투자를 받아 영화로 제작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노력 중이에요. 더는 혼자 끙끙대며 수정하지 않고 작가를 구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보려고요.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신가요?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에 대해 갖는 기대가 있잖아요. 크리스천이 크리스천으로서 영향력을 가지려면 다른 이들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그만큼 잘 만들어야 하고요. 무엇보다 감독은 특정한 영화 한 편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의 인성과 인생 전체로 평가받는 사람이에요. 영화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품과 인성이 바로 선 감독이 되고 싶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주간이 다가옵니다. 고난에 처했을 때 감독님이 취하는 신앙의 태도를 나누어 주세요.

시기마다 달랐어요. 어떤 땐 뭘 좀 더 해 보려고 한 적도 있고, 어떤 땐 가만히 있은 적도 있고요. 요즘에는 고난 자체를 평안히 받아들여요.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죠. 이 시기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지나가는 동안 가만히 있을 것인가, 무엇이라도 할 것인가, 무엇을 한다면 대외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내 안에서 해결할 것인가. 그때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하죠. 그리고 시편 23편 1절 말씀(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을 묵상해요.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고난만을 허락하시더라고요. 고난을 잘 이겨 내고 나면 분명 우리는 성장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도 쌓여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난 중에 소망을 품는 독자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추천하고 싶어요. 소망과 희망이 생기는 영화거든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 영화를 보며 따스한 위안을 받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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