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FOOD
Two Sisters, One Dream
따뜻한 사람이 되세요
Guideposts 2024 | 3
COMFORT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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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Sisters, One Dream
따뜻한 사람이 되세요
I was a teacher. My sister was a nurse. We both loved to bake.
We both had strong faith. But was that going to be enough?
나는 교사였다. 동생은 간호사였다. 둘 다 베이킹을 좋아했다.
신앙심도 깊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By DEIDRA KEENER, DeSoto, Texas
데이드라 키너 텍사스주 데소토
Saturday, February 26, 2022. It was 10 minutes before the grand opening of our bakery in DeSoto, Texas—Two Sisters Sweet Creations. The moment my sister, Yolanda, and I had worked toward for the past year was finally here. I looked at Yolanda in amazement. We’d left our careers to open a bakery! It was a risk worth taking, but I couldn’t help feeling nervous.
We’d stayed up late, baking and doing last-minute cleanup with help from our closest friends, Yolanda’s husband and kids, my fiancé. Now the display cases and shelves were filled with mini pies, cookies, cake slices, cupcakes, cheesecakes and more. We joined hands and said a prayer of thanks. God had gotten us this far. And to think, planning our bakery had all started during the pandemic, a time of so much fear and uncertainty!
Perhaps the roots of our dream went deeper than that. When I was eight and Yolanda was six, we spent a lot of time with our grandmother Juanita “Bakey” Howard. Her apartment in Texarkana was filled with love and the aroma of freshly battered and fried corn dogs, along with other delicious foods.
Every day, a constant flow of people came to our grandma’s apartment, eager to buy a home-cooked meal. Yolanda and I looked on in admiration as our grandma served her neighbors, who’d become repeat patrons.
Grandma had been up for hours in her tiny kitchen, playing her record player as she prepared the day’s delicacies. Looking back, I realize she was working hard to support her family, including Yolanda and me. Maybe she was also saving for her dream of buying her own home. What I saw was a confident, God-fearing woman making it by her own effort. She was my first role model as an entrepreneur, though I didn’t fully grasp the concept back then.
2022년 2월 26일 토요일. 그날 우리는 텍사스주 데소토에서 우리 빵집 ‘Two Sisters Sweet Creations’의 대망의 개업을 10분 남겨 두고 있었다. 동생 욜란다와 내가 지난 일 년 동안 기를 쓰고 달려온 순간이었다. 놀란 표정의 욜란다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빵집을 열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었다. 위험을 감수하긴 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밤새 빵을 만들었고, 가까운 친구들과 욜란다의 남편과 아이들, 내 약혼자의 도움으로 마지막 청소를 마쳤다. 진열대와 선반은 미니파이, 쿠키, 조각케이크, 컵케이크, 치즈케이크 등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이끄셨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빵집을 차리겠다는 계획은 모두가 불안과 불확실 속에서 살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어쩌면 우리 꿈의 뿌리는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가 여덟 살이고 욜란다가 여섯 살이었을 때, 우리는 할머니 후아니타 ‘베이키’ 하워드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택사캐나의 할머니 아파트는 사랑과 갓 반죽해 튀긴 핫도그 그리고 다른 맛있는 음식 향으로 가득했다.
매일, 할머니의 집밥을 사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할머니 아파트를 찾아왔다. 욜란다와 나는 후에 단골손님이 된 사람들에게 할머니가 음식을 나눠 주는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전축을 켜고, 그날의 진미를 준비하며, 자그마한 주방에 몇 시간을 머물렀다. 돌이켜 보니, 할머니는 욜란다와 나를 포함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것이다. 아마도 집을 사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저축도 하셨을 것이다. 내가 본 할머니는 자신감 넘치는 독실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노력해서 꿈을 이뤄 낸 분이었다. 할머니는 사업가로서 나의 첫 번째 롤모델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사업가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Within two years, Grandma was able to purchase a home across town, on 43rd Street. The kitchen was only slightly bigger than the one in her apartment, but it enabled Grandma to expand her culinary repertoire and Yolanda and me to witness the joys of baking.
Grandma showed me how to weave the lattice crust on her famous peach cobbler and navigate the kitchen with ease. She didn’t pepper us with instructions. She rarely wrote down a recipe. I learned by watching and looking for her sweet smile of approval.
What Grandma did talk about was faith. “Every day is not going to be the same,” she said. “When things aren’t going well, look to the Heavenly Father and ask for a little more strength.”
I learned the most from watching how Grandma lived her life. She didn’t just go to church; she was all in—teaching Sunday school, making comfort food for a church anniversary or when someone passed. At every church celebration, her 7UP pound cake, Sock-It-to-Me cake and peach cobbler were in high demand. Her love of God and for others shone through in everything she did. The time we spent together left a lasting impression.
When I was a freshman at Jackson State University, Grandma sent me a letter, the only one she ever wrote me. “I’m not one for words,” she wrote, but her letter was full of encouragement. She ended with, “I love you. Stay sweet.”
Our grandma’s life of service inspired both Yolanda and me. I became a teacher; Yolanda, a nurse. I was so grateful Grandma saw us begin our respective careers before she died in 2005. Yolanda and I worked extremely hard. She married and had four children. We always made time for each other and for baking. I was never happier than when we were making tea cakes, German chocolate cake or banana pudding together. We’d suddenly begin singing like Grandma and dancing while creating our decadent desserts. Sometimes friends asked us to make desserts for special occasions, but teaching was my God-given purpose. Same with Yolanda and nursing. I dreamed of starting my own business one day centered around education.
2년 만에, 할머니는 건너편 43번가에 집을 살 수 있었다. 주방이 겨우 조금 커졌을 뿐인데, 할머니가 요리할 수 있는 목록이 늘어났고, 욜란다와 나는 베이킹의 즐거움을 목격했다.
할머니는 가장 인기 많은 복숭아 코블러에 격자무늬 크러스트를 올리는 방법과 주방에서 수월하게 작업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시지는 않았다. 조리법도 거의 적어 두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면 잘한 것으로 알고 그렇게 배웠다.
할머니는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하루하루가 항상 같을 수는 없단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찾고 조금의 힘을 달라고 요청하렴.”
나는 할머니의 삶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할머니는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고, 교회 기념일이나 누군가 돌아가시면 위로의 음식을 만드셨다. 교회 행사 때마다 할머니의 파운드케이크, 삭잇투미 케이크(사워크림 피칸, 황설탕, 시나몬 필링과 상단의 바닐라 글레이즈가 덮인 부드러운 식감의 튜브 모양 케이크. 1960~1970년대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나에게 그것을 달라’는 뜻의 ‘Sock it to me’를 앞에 붙여 불렀다고 한다-역주), 복숭아 코블러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았다. 하나님과 타인을 향한 할머니의 사랑은 할머니가 하는 모든 일들에서 빛이 났다.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은 내게 오래도록 깊은 감명을 남겼다.
잭슨주립대학 1학년 시절, 할머니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할머니가 보낸 유일한 편지였다.
“나는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썼지만, 할머니의 편지는 격려로 가득했다. 편지는 “사랑한다. 따뜻한 사람이 되렴”으로 마무리되었다.
할머니의 베푸는 삶은 욜란다와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는 교사가 되고, 욜란다는 간호사가 되었다. 할머니가 2005년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 둘이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가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욜란다와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할머니는 결혼해서 네 명의 아이를 낳았다. 우리는 항상 시간을 내어 만나서 빵을 구웠다. 티케이크, 독일식 초콜릿케이크, 바나나 푸딩 등을 만들 때면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우리는 할머니처럼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시럽을 듬뿍 얹은 디저트를 만들면서 춤을 추었다. 때때로 친구들이 특별한 기념일을 위한 디저트를 우리에게 주문하기도 했지만, 내게 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었다. 욜란다도 간호사 일이 그랬다. 나는 언젠가 교육 중심의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Then, in 2018, when I was 39, I was diagnosed with breast cancer. The pain after my surgery was intense, and the healing process was slow. Yolanda was by my side for the duration of my recovery, helping take care of me. “You need to take your meds and do your breathing exercises as scheduled,” she’d tell me. Spending time with God was and continues to be mandatory. I conquered every day by asking God for a little more strength, the way Grandma used to.
As my body and mind were healing, I felt a new sense of urgency. I could no longer ignore the burning desire to start my own business. I left classroom education and secured a position as a professional learning specialist in a larger school district, so I could hone the skills necessary to advance my career. I expanded my knowledge of curriculum and instruction. It was the right trajectory for the goals I’d set for myself.
Then Covid hit. As a recent cancer patient, I had to be cautious. Long after my colleagues returned to the office, I continued to work from home. The team I worked with felt far away. That sense of urgency, though, was stronger than ever, as if God was pushing me to make a difference in some other way.
Yolanda also faced uncertainties regarding her job. The nursing agency she worked for did its best to accommodate her needs, but she didn’t want to endanger her family. Yolanda thought there had to be a better way. Was it a bakery? Baking was something we both loved and did well. Still, I had invested so much time and energy in researching a business in education—thinking about the right location, creating lessons and modules, analyzing data on school districts. How could I put my first passion on the back burner? After many conversations and prayers, we realized God was preparing us for something much greater: our own bakery.
그러던 2018년, 서른아홉 살에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고통이 극심했고, 회복 과정은 더뎠다. 욜란다는 내가 회복하는 동안, 나를 돌보며 곁을 지켰다.
“약을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에 호흡 운동을 해야 해.”
욜란다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의무이자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할머니가 그랬듯, 조금의 힘을 달라고 간청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몸과 마음이 점차 치유되면서 새로운 절박감이 생겼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사업에 대한 열망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교실 교육을 떠나서 더 큰 학군에서 학습 전문가로서 지위를 얻고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과 수업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올바른 궤도였다.
그때 코로나가 터졌다. 얼마 전 암환자였던 나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동료들이 사무실로 돌아간 지 한참 후에도 나는 계속 재택근무를 했다. 함께 일하던 팀원들과 멀어진 느낌이었다. 절박한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강력했고, 마치 하나님께서 뭔가 다른 식으로 차이를 만들어 보라고 재촉하시는 것 같았다.
욜란다도 직업과 관련해 확신하지 못하는 사건에 부딪쳤다. 욜란다가 일한 요양기관은 욜란다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 줬지만,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욜란다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빵집이었을까? 제빵은 우리 둘 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적절한 장소를 생각하고, 새로운 수업과 교과목을 만들고, 학군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교육 사업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나는 왜 가장 우선되는 열정을 뒤로 제쳐둔 것일까? 수많은 대화와 기도 끝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셨음을 깨달았다. 바로 우리가 주인인 빵집이었다.
In June 2021, our church, Friendship-West Baptist Church, once again hosted West Wall Street, an event designed to give small, minority-owned businesses an opportunity to showcase their products and services to a broad community of potential customers, allowing them to build up their businesses and network. Yolanda and I participated, as we had done since 2016, when West Wall Street had begun. We baked a variety of desserts and sold out both days.
She and I spent hours together in prayer, seeking God’s guidance. We recognized that if we wanted to pursue our goal, we would have to follow Grandma’s advice and believe that God would give us the strength we needed to persevere each day. The time had come to take a huge leap of faith, leave our careers and dedicate ourselves to establishing a lucrative bakery together. “Lord, we trust you,” we said. “If what we want doesn’t align with what you want, we know it will not come to fruition.”
We formulated our business plan with an emphasis on building relationships and giving back to the greater community. With the funds we’d saved from fulfilling orders through the years, we were able to begin. We did exhaustive research on opening a business, trends in the baking industry and needs in the community in which we would serve.
We found a small storefront within our budget, only to have the deal fall through at the last minute. A few weeks later, we found a new storefront, bigger than the first yet affordable. Once again God had provided.
2021년 6월, 우리 교회 ‘프렌드십-웨스트 침례교회’는 다시 한 번 ‘웨스트월스트리트’ 행사를 열었다. 그것은 소상공인들로 하여금 광범위한 지역 사회의 잠재 고객들에게 그들의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지역 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왔다. 웨스트월스트리트가 처음 시작된 2016년부터 참석해 왔듯이 이번에도 욜란다와 나는 참석했다. 우리는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고 이틀 만에 완판을 했다.
욜란다와 나는 몇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추구하려면, 할머니의 조언을 따라, 매일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거대한 신앙의 도약, 퇴사 그리고 수익성 좋은 빵집을 시작하기 위해 헌신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이 결실을 맺지 않을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관계를 구축하고 더 큰 지역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에 주력하는 사업 계획을 세웠다. 몇 년간 주문받아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고 제빵산업의 동향과 우리가 봉사할 지역사회의 필요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우리는 예산 내에서 작은 상점을 발견했는데 막판에 거래가 무산되었다. 몇 주 후, 새 가게를 찾았는데, 이전 가게보다 더 크면서 우리 예산에 맞는 곳이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것이다.
Now we were about to welcome our first customers. Our family and friends graciously serving as staff for the day stood ready behind the register and display counters. I took a deep breath, and Yolanda and I opened the front door. Customers streamed in: our pastor, fellow church members, former colleagues, DeSoto residents, city council members. They bought a variety of the desserts we had prepared. Some couldn’t wait to get home and ate them right there. It felt as if we were back in the fellowship hall with Grandma, celebrating a special occasion with our friends and loved ones. Yolanda and I were constantly summoned to take photos and receiving heartfelt congratulations. We baked all day so we wouldn’t run out of anything. People left with bags full of sweet treats. By day’s end, we were sold out of a lot of items.
Running our own bakery is hard yet rewarding work. Yolanda and I know we’re doing what God prepared us to do since we were little girls, spending quality time with our grandma. We’ve become acquainted with our customers, whom we call Sweetsters. We donate desserts to schools, businesses and organizations. We also have regular giveaways. We keep toys and clothes in our office to give to children who have a received a great report in school, won a special award or just because we are led by the Spirit. And we have a special group of older customers who have showered us with love and support and treated us like family. We affectionately call them Senior Sweetsters. To show our appreciation, we invited them to the bakery for a home-cooked meal, with everything from smothered pork chops to collard greens and garlic mashed potatoes. And of course, a little dessert too.
All this is our way of telling people, “We love you. Stay sweet.” Grandma Bakey would be proud.
지금 우리는 첫 번째 손님을 맞으려 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친절하게도 일일 직원으로서 계산대와 진열대 뒤에 서서 준비하고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욜란다와 함께 가게 문을 열었다. 목사님, 교회 성도, 전 직장 동료, 데소토 주민, 시의회 의원 등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가 준비해 둔 다양한 디저트를 샀다. 어떤 사람들은 빨리 집에 돌아가서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고 했다. 마치 할머니와 교회 친교실에서 친구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특별한 날을 기념하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욜란다와 나는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청과 따뜻한 축하 인사를 끊임없이 받았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하루 종일 빵을 구웠다. 사람들은 달콤한 간식이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가게를 떠났다. 끝날 무렵에는 거의 모든 디저트가 팔렸다.
빵집을 운영하는 일은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다. 할머니와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일을 지금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고객들과도 가까워졌다. 우리는 고객들을 ‘스위트스터(Sweetster)’라고 부른다. 우리는 학교와 기업, 기관에 디저트를 기부하고 정기적인 나눔도 한다. 성적을 잘 받거나 특별한 상을 받은 아이들에게 또는 단순히 성령에 이끌린 날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사무실에 장난감과 옷을 비치해 둔다. 그리고 고객 중에는 특별한 어르신 그룹이 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고, 우리를 가족처럼 대한다. 우리는 애정을 담아 그분들을 ‘시니어 스위트스터(Senior Sweetster)’라고 부른다. 가게에 그분들을 초대해 양념한 폭찹에서 콜라드그린과 갈릭매쉬드포테이토에 이르는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물론 간단한 디저트도 드린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사랑합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세요’를 전하는 방법이다. 우리 할머니 베이키가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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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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