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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에 수놓은 마음
Guideposts 2024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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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에 수놓은 마음
결단은 쉽다. 마음의 동기를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선포하면 되는 일이다. 다만 ‘결단’한 것을 ‘결과’로 증명하는 일은 도무지 만만치 않다. ‘하겠다’를 ‘해냈다’로 바꾸어 내기란 손바닥 뒤집듯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결단 이후의 태도와 실행 여하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진다. 그렇다. 결과는 냉혹하도록 정직하다. 이토록 정직한 결과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내면의 심지를 올곧게 세우며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음악의 세계를 깊이 탐색하겠다는 열망으로 17세에 자퇴를 결단한 이후 바지런히 자신만의 길을 내어 온 작곡가 하은지다. 그의 결단은 언제나 섣부르지 않았으므로 결과는 영롱하게 빛났다. 자신의 결단을 결과로 증명해 내기 위한 분투 가운데 쏟은 눈물과 기도는 그가 오선지에 수놓은 250여 곡에 깊숙이 스며 있다.
10대부터 독학으로 작곡가의 입지를 다져 왔습니다. ‘음악(작곡)이 나의 길이다’ 자각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초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작곡을 해 왔지만, 음악이 나의 길이라고 확신한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예요. 학교의 언니들과 친구들에게 제가 만든 곡을 들려주었는데 매우 좋다는 피드백과 격려를 들었거든요. 그때 ‘내게 작곡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 흘러 온라인의 피아노 커뮤니티에 저의 창작곡을 올렸는데 감사하게도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댓글도 많이 달리고, 악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도 쇄도했죠. 그때 좀 더 선명해진 것 같아요. 음악 그리고 작곡이 내 길이라는 생각이요. 그저 음악이 좋아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쓴 곡들이 누군가에게 흘러가서 힘과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 크나큰 보람으로 안겨 오더라고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괜찮겠다는 확신은 사실 그때 들었어요. 음악을 하는 ‘의미’가 생긴 거죠.
음악의 길을 확신한 이후 고등학교 자퇴를 결단하셨는데요. 당시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열 장가량의 학업 계획서를 쓰셨다고요. 비장한 각오로 새겨졌을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3년 동안 중학생 시절을 보낸 뒤에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여러 면에서 갭(gap)이 느껴졌어요. ‘세계를 품는 크리스천 리더’라는 슬로건 아래 성경 기반의 교육을 받고 신앙 중심의 교칙을 지키며 자라 온 제가 한순간에 입시 교육 체제의 경쟁 구도 속에 놓였으니까요. 저의 음악 세계를 이루고 싶은 목표와 열망이 컸던 만큼 회의감도 더 깊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자퇴를 만류하셨기 때문에 저의 계획과 각오를 구체적으로 적기 시작했어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해서 학업을 이어 가겠다는 것, 시기마다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담았죠. 당시 저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그 편지를 부모님 앞으로 우편 발송했어요. 부모님께서 편지를 받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래, 네 마음이 이 정도라면 한번 해 봐.”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습니다. 음악으로 쌓아 올린 지난 시간 가운데 가장 빛나는 기억을 꼽는다면요?
스무 살, 2013년 6월에 저의 곡이 크게 노출된 적이 있어요.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올린 포스팅 중 하나가 메인으로 선정되면서 많은 사람이 유입되었거든요. 순식간에 댓글이 몇백 개 달렸고, 메일이나 DM(Direct Message)도 쏟아졌죠. 많은 분이 저의 이야기와 음악을 듣고 자신의 사연을 스스럼없이 나눠 주었어요. 그중에는 암 투병 환자, 취준생 등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이 많았어요. 따지고 보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잖아요. 그저 제 포스팅 하나에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시는 그분들한테 도리어 제가 위로를 받았어요. 대외적인 활동이나 경험은 지금이 훨씬 더 풍부하지만, 제게는 그 시절이 가장 반짝거리는 기억으로 남아요. 한마디로 제 음악 인생의 초석을 세운 기념비 같은 시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때 ‘사람을 살리는 음악을 해야겠구나’ 다짐하며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어요.
시기마다 창작곡의 특색도 다를 것 같아요. 어떤 곡이 좀 더 애착이 가나요?
아무래도 나이대에 따라 관점, 생각, 느낌이 달라져요. 10대에 창작한 곡을 들어 보면 반짝반짝해요. 딱 들어도 멜로디가 독특하고 개성 있죠. 20대의 창작곡은 그보다 조금 정제된 느낌이 들고요. 30대에 진입하면서 창작한 곡들은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좀 더 깊어진 느낌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들게 쓴 곡이라든지, 몹시 어려웠던 시절에 쓴 곡들이 머리에 남아요. 하지만 애착이 가는 건 듣는 이에게 생명력을 주는 곡들이에요. 〈황야를 달리다〉의 경우 워낙 초기작이기도 하고 연주하기 쉽지 않은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오래도록 많은 분께 큰 사랑을 받은 곡이기에 마음이 더 가요.
악보집 4권을 비롯해 소설책 2권, 에세이집 1권의 창작자이신데요. 창작에 몰입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반대로 슬럼프가 찾아오면 어떤 태도를 취하시는지요?
감정이 폭발할 때요.(웃음) 시간으로 따지면 보통 새벽 1시에서 4시 사이가 가장 집중이 잘돼요. 아이러니하게도 심적으로 괴롭거나 슬픈 일을 겪고 있을 때, 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품고 있을 때 창작에 몰입이 잘돼요. 막힌 감정을 표출하는 대상이 저에게는 음악과 글인 셈이죠. 그 순간에는 어떤 외부의 소리도 침투하지 않아요.
사실 슬럼프는 굉장히 잦아요. 아무래도 영감이 늘 샘솟는 건 아니니까요. 곡을 쓸 때는 내가 생각한 악상대로 구현이 안 되는 경우가 가장 흔한 슬럼프죠. 특정한 한 토막에 발이 걸려서 완성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그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요. 혹은 한동안 잊어버리도록 내버려 둔 채 일상을 살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갑자기 해결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정말 생각지 못한 순간에요.
반면 슬럼프 없이 한 큐에 작곡이 끝나는 경우도 있어요. 악상이 떠오르면 녹음 버튼을 눌러 놓고 연주를 해요. 끊김 없이요. 그 후에 녹음 파일을 재생해서 실수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악보를 만들죠. 그렇게 나온 곡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건 진짜 영감이 올 때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웃음)
작곡에 임하기 전에 취하는 특정한 습관이 있나요?
작곡 전에 건반을 붙잡고 기도해요. 공연 때도 마찬가지고요. 자퇴 이후로 쭉 지속해 온 습관이에요. “하나님, 제게 영감을 부어 주세요. 저를 통해 흘러나온 선율들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요. 모든 곡이 기도로 완성되었어요.
예전에 본인의 저력, 곧 무기가 ‘열정’과 ‘꿈’이라고 말했잖아요. 세월이 흐르면서 더해진 새로운 무기가 있다면요?
일단 ‘끈기’가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열정과 꿈을 무기라고 이야기했던 시기는 정식으로 작곡을 시작한 지 2~3년 차 때예요. 그 후로 십 몇 년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는데요. 그 와중에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고 한길을 걸어왔다는 것, 그것이 무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10대의 패기로 반짝거렸다면, 지금은 한 가지를 꾸준히 지속해 온 힘으로 뭉근한 빛을 내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무기는 ‘성숙’이에요. 신기하게도 지난 10여 년간 여러 일을 겪으며 내외부적으로 성장한 흔적이 음악에도 담기는 것 같아요. 10여 년 전의 작품과 지금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깊이가 좀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이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간혹 연락을 주는 팬분들도 음악이 달라진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시더라고요. 제가 겪은 아픔이 선율에 녹아 더 깊은 위로로 다가설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더해진 것 같아 감사해요. 끈기와 성숙, 이 두 가지 무기는 시간이 흘러야 장착할 수 있는 무기잖아요. 이제야 조심스럽게 꺼내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아마도 향후 10년 뒤에는 또 다른 무기가 생기겠죠. 그래서 기대가 돼요.
곧고 단단한 믿음과 의지로 결단한 것들을 차근히 실행하며 수많은 결실을 맺으셨어요. 이러한 내면의 힘을 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요. 자퇴한 뒤에도 변함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어요.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종일 피아노를 치며 하루를 보냈죠. 그 앞에서 밥 먹고 공부도 하고요. 피아노 앞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나-피아노, 이렇게 삼각 구도가 이루어졌어요. 그 시절에 하나님과 ‘소통’하며 뜻을 구하는 습관이 길러졌죠. 그 덕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 일단 하나님께 여쭤본 뒤 움직이게 되었어요. ‘일기’ 또한 저의 내면의 힘을 키운 중요한 요인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 오면서 내면이 단단해졌거든요. 일기를 쓰는 행위는 하루의 일들을 흐지부지 흘려보내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해 다음 스텝에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그날의 사건과 느낌을 적어 내려가면서 내면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심지가 곧아지고 또 저만의 색깔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하나님과 독대하는 골방의 시간에 어떤 기도를 올려드렸나요?
“하나님, 저를 크게 사용해 주세요.” 밑도 끝도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 그렇게 기도했어요.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길 원합니다”예요. 작곡할 때 말고는 주로 그 기도를 했네요.
개척교회의 목회자 자녀로 성장하셨잖아요. 때때로 신앙의 질문들이 솟구쳤을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있었죠. 한때 하나님을 사무치게 원망해 본 적도 있어요. 신앙의 고비를 맞닥뜨릴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과의 대화뿐이었어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저 묻고 또 물었죠. 수년 전 부모님이 사역하시던 교회에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이 일어나 급기야 교회 문을 닫게 되었을 때 말로 다 못할 상실감을 느꼈어요. 그동안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헌신하며 섬겨 왔는지 지켜봤으니까요. 이후로 생계를 잇기 위해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식당에서,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학원에서 일해야 했죠. 저녁부터 밤까지는 가족 모두가 부품 조립 부업에 매달려야 했고요. 한편으로는 작곡을 놓지 않기 위해 주변 교회에 피아노 동냥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 시절 저는 늘 하나님께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살아 계시나요?” 그 질문을 꽤 오래 가지고 있었죠. 하나님은 제게 신실하게 응답하셨어요. 모함과 박해로 인한 상처를 아름다운 선율로 승화시켜 주셨으니까요. 원망의 대상들을 용서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좀 더 넓어졌어요. 무엇보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졌고, 그분을 꽉 붙들고 나아가게 되었죠.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말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어요.
‘복음의 통로’로서의 음악에 대한 고민도 깊을 것 같습니다. 음악에 복음을 담는 자기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저를 문화예술인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믿기에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특정 예술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마음에 닿은 한 작품을 좋아하다가 그다음 작품을 찾아보고, 나중에는 그 작품을 만든 창작자의 팬이 돼요. 저 역시 다른 음악가의 곡을 한창 찾아 듣던 시절,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그 사람의 다른 앨범을 찾아 들어 보고, 그 사람이 쓴 책도 읽고 또 근황도 살피면서 신뢰와 유대감을 쌓아 갔죠.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음악은 그저 수단이자 도구예요.
저의 음악을 통해 결국 하은지라는 사람이 전해지는 것이니까요. 저의 궁극적인 사명인 ‘메신저’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일단 뛰어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공자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도록 실력과 영성을 갈고닦기 위해 공부하며 곡을 만들고 있어요. 그렇게 만든 저의 곡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고 계시죠. 사실 제 삶은 하나님을 빼놓으면 설명이 안 되기 때문에 저의 음악은 물론 글에도 신앙이 녹아 있어요. 제 음악을 듣고 저를 알아 가는 분들 중에는 지난 10년간 쓴 블로그와 책을 찾아 읽고는 제가 믿는 하나님을 찾는 분이 있어요. 곡을 듣다 보니 하나님이 진짜 있는 게 느껴진다거나, 실제로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결국 복음을 전하는 건, 말씀에 의거하여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가며 삶 그 자체로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인 것 같아요.
수많은 버킷리스트에서 이뤄 낸 것들 중 가장 보람된 일을 하나 꼽는다면요? 또 앞으로 전혀 다른 영역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지요?
첫 공연이요.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먼 길을 마다 않고 와서 내 음악을 들어 준다는 그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어요. 머릿속에 늘 꿈꿔 오던 장면이 실현되었으니까요. 온라인에서 한창 좋은 반응을 얻던 20대 초반에 한 첫 공연이 매진되었거든요.
전혀 다른 영역의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어요. 마케팅 회사에서 한창 일을 배우고 있거든요. 그저 ‘우직하게’만 나아가던 기존의 패러다임이 많이 깨졌어요. 흘러가는 트렌드(trend)를 읽고, 내 것으로 잘 소화해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중이죠.
거침없이 도전했던 10대에서 20대를 지나 비로소 30대에 진입하셨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30대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요셉을 보면 10대, 20대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 앞에서 좀 많이 굴렀잖아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낮아져 엎드린 시간이 있었기에 30대부터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10대, 20대에 울고 웃으며 하나님 앞에 구른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하게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고난 가운데 곤고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 눈물의 자산이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해요. 작곡 전에 올려드리는 기도처럼 저의 곡이 ‘꼭 필요한 한 사람’에게 가닿아 꽃피우기를요.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내고 있는 〈가이드포스트〉 독자분들에게 격려가 될 만한 곡을 권해 주세요.
제 곡 중에 〈우리의 길〉이라는 곡이 있어요. ‘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쓴 곡인데요. 아마 듣는 사람마다 떠올리는 풍경은 다 다를 거예요. 각자가 어떤 길에 서 있든 한 발짝 한 발짝 발 앞의 등불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은혜이고 복된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곡을 통해 저의 마음이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우리 이 삶을 같이 이겨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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