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원래는 일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지독한 워커홀릭이셨다고요. 인생의 ‘분기점’으로 삼을 만한 사건이 있었나요?
2018년, 그즈음부터 인생이 점점 바뀌어 갔죠. 그전까지는 일에만 파묻혀 살았거든요. 3년 근속하면 주어지는 리프레시 휴가도 반납할 정도로요. ‘인정 욕구’ 때문이었어요. 일한 만큼 돌아오는 보상과 신뢰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르고 저 자신을 혹사했던 거죠. 10년이 넘도록 쉼 없이 달리기만 한 저에게 3주의 유급 휴가가 주어졌어요. 그때 문득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아내를 설득한 끝에 일주일의 자유 시간을 허락받아 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어요. 난생처음 나 자신을 다독이는 그 시간이 그렇게 감격스럽고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곳에서 저는 10년 동안 했던 생각의 10배, 100배의 생각을 했어요. 저 자신, 가정, 일….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 여행 이후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놀랍게도 새벽 기상을 지속하게 되었고요. 이전 직장에서는 아침잠이 많아 자주 지각하는 저를 빗대어(첫 직장에서 ‘찰스’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찰스타임’이라는 시간 개념이 생겨날 정도였거든요. 그런 제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죠.
‘찰스타임’을 거슬러 새벽 루틴을 지속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었어요. 물론 제 안의 절실함도 한몫했고요. 그 시기에 모 교육기관의 ‘자기혁명캠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새벽을 깨우며 서로의 꿈과 목표를 독려했죠. 매일 계획을 작성해서 올리고, 바인더에 성공과 실패를 기록해 나가니까 더욱 동기부여가 되더군요.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기른 것도 루틴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상담과 코칭을 접하신 것도 그 무렵이겠군요.
맞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 강의를 들었어요. 자기혁명캠프를 비롯해 1인 기업가 과정, DID 강연 코칭 과정, 블로그 과정, 창업 멘토링 과정, 한국코치협회 KAC 과정, 브리젠 마케팅 전문가 과정, 유튜브 과정, 다원재능심리학 전문가 과정… 정말 많죠?(웃음) 이 과정들에 임하는 동안 저는 상담과 코칭을 ‘받는’ 사람이 아닌 상담과 코칭을 ‘하는’ 사람이 되어 갔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만 하던 제가 ‘마당’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토크쇼 사회를 보고, 그 수익금으로 보호종료아동을 돕는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한편, 제게 상담과 코칭을 받으시는 분들이 제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저 자신도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죠. 이렇게 일련의 과정 가운데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제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님을 향해 마음 문을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오랜 시간 교회를 멀리했어요. 어린 시절의 상처가 깊었거든요. 모진 시집살이로 버거운 삶을 사시던 어머니는 어린 저를 많이 혼내고 야단치셨어요.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제가 자주 코피를 쏟자 죄책감을 느끼신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죠. 한번 코피가 쏟아지면 7, 8시간 동안 멈추지 않았거든요. 어머니는 하나님을 영접하신 뒤 매일 눈물로 회개 기도를 하셨어요. 마침내 저의 코피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자 더욱 독실하게 하나님을 섬기셨죠. 그런 어머니를 핍박하는 아버지의 폭력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에요. 유년 시절의 공포 어린 기억에 붙들려 살던 제가 다시 하나님을 떠올리게 된 건, 여러 과정 가운데 만난 분들에게서 들은 믿음의 고백 덕분이었어요. 마치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어 저를 가르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군 시절 들었던 찬송가 ‘너는 내 아들이라’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차 안에서 그 곡을 틀어 놓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그렇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3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