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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자입니다


Guideposts 2024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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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4 | 7

나는 여행자입니다


‘이날을 위함이었구나!’ 탄성처럼 깨달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무작위로 찍힌 발자국으로만 여겼던 지난날의 행적이 실은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지도였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박요셉 대표가 오랜 세월 새겨 온 발자취가 태백의 삼수령에 자리한 ‘무무공간’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려 온 그는 그 무엇에도 공로와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다시금 새 땅의 개척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이 판 우물을 내어주고는 새 우물을 파고 또 판 이삭처럼. 세 강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삼수령에서 네 번째 물줄기를 틔워 올리기까지 그가 그려 온 행적, 결국 이날을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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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정착한 지 20년, 만만치 않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시간을 한 문장 또는 한 단어로 표현하신다면요?


저는 스스로를 ‘여행자’라 여기며 살아요. 제가 머무는 곳은 여행지라고 생각하고요. 2004년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하기까지의 지난 세월 역시 여행에 비유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곳이 여행의 종착지는 아니에요. 그저 인생 여행지 중 한 곳에 조금 오래 머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20년의 세월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만남’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여행을 ‘떠남과 만남 그리고 돌아옴’이라고 정의하셨거든요. 저에게 지난 20년은 새로운 곳, 새로운 대상과의 ‘만남’이 끊임없이 이루어진 시간이었어요. 제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격려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시작된 ‘여행(모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네요.



한 번 시도하기도 어려운 창업을 다섯 번이나 도전하셨어요. 히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미디어 콘텐츠 사업이었어요. 2007년 무렵 북에 있는 가족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려고 영상 편집을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됐죠. 대학 시절 UCC 콘테스트 등에서 수상도 여러 번 했어요. 따로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상금으로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대학 졸업 후 미디어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해 보자는 취지로 2013년 ‘제이협동조합 미디어컴퍼니’를 설립했어요.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모델을 보면서 통일 이후에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011년부터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막상 조합을 결성하고 보니 협동조합 형태가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의사 결정 구조가 롱텀이니까요. 협동조합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어요. 주식회사를 꾸려 탈북민들이 자립과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죠. 그 무렵 서강대 이재범 교수님을 통해 호주의 커피 브랜드를 소개받았고, 2014년 기업은행의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용인에 1호점 ‘카페 레드체리’를 열었어요. 다음 해 6월 한남동에 2호점 ‘스페이스 요벨’을 열었고요. 당시 기업은행의 권선주 행장께서 ‘탈북민 창업을 지원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쓰셨는데, 때마침 제가 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와 맞물려 기업은행에 사내 카페를 열 수 있게 되었죠.



적합한 때에 통로가 열렸군요. ‘요벨’이라는 이름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희년’이라는 뜻이에요.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들과 북한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회복의 소망을 줄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에요. 통일을 준비해 가는 사람들의 일터로 자리 잡기 위해 탈북 청년과 남한 청년이 6:4의 비율로 함께 일하는 모델을 구축했어요. 감사하게도 사회적 경제를 추구한 노력을 인정받아 창업한 지 5년 만인 2019년 3월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죠. 사내 카페이다 보니 매출이 안정적으로 발생해서 또 다른 프로젝트도 시도할 수 있었어요. ‘요벨팜’이라는 생태 순환 농업 사업이었죠.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탈북 청년들이 서비스 업종인 카페를 꾸려 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근본적인 부분에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탈북 청년들에게 ‘농업’이 적합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창조 질서를 회복해 가는 농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유기농을 뛰어넘는 생태 순환 농법을 알게 되었고요. 2017년에 시작해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 부득이 사업을 올스톱해야 했지만요.(웃음) 당시 쌍둥이를 출산한 뒤 ‘독박 육아’로 심신이 상한 아내를 살리기 위해 육아를 전담했거든요. 10개월가량 육아를 도맡던 중 네 번째 기회가 찾아왔어요. 소셜 임팩트 투자사 (주)엠와이소셜컴퍼니가 탈북민의 자립을 위해 설립한 ‘공유 주방’ 사업인 엠와이소셜프랜차이즈를 맡아 운영하게 된 거예요. 이 또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여러 난관에 맞닥뜨려야 했어요. 그 시기(2023년)에 본격적으로 아산나눔재단의 탈북민 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경영 수업을 받으며 전문적인 창업 코칭과 투자를 받게 되었죠. 그 값진 수업의 결실이 다섯 번째로 창업한 ‘무무공간’이에요.

그동안 꾸려 오신 사업체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6차 산업 모델인 ‘무무공간’에서 이루어질 다채로운 사업 영역을 준비하는 마중물이었다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창업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이 저를 준비시키신 것 같아요. 탈북 후 중국에서 체류할 때 생존을 위해 목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든요. 남한 정착 후에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고요. 이후 시도했던 다양한 창업 아이템인 미디어, 커피, 생태 순환 농장, 공유 주방, 이 모두가 ‘무무공간’이라는 새 사업체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해발 1000미터에 자리한 15만 평의 대자연 속에서 동물농장 체험, 오토캠핑, 카페, 레스토랑까지 누릴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그동안 저는 어떻게 하면 성경적인 기반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세울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오랜 시간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답을 찾지 못하던 차에 ‘요벨팜’을 준비하면서 ‘이거다!’ 싶었죠. 자연 속에서 ‘소를 소답게, 돼지를 돼지답게’ 키움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는 ‘생태 순환 농법’이야말로 하나님의 방법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비즈니스라고 여겼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요벨팜’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지만 삼수령 목장에서 그 방향성을 따라 비전을 실현할 수 있어 감사해요. 사업이 일사천리로 척척 풀리지는 않지만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성경적 세계관이 녹아 있는 사업 모델을 잘 실현해 내고 싶어요.



‘무무공간’이 자리한 태백 ‘삼수령’이 지리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요. 훗날 남과 북의 통로가 열렸을 때 ‘무무공간’이 어떻게 쓰임 받기를 소망하시나요?


삼수령은 한강·낙동강·오십천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세 강의 발원지예요. 저희 목장 밑에 자리한 ‘북한선교센터’는 영적인 의미에서 ‘네 번째 강’이 흘러가는 발원지고요. 물리적인 물줄기가 동해, 서해, 남해로 뻗어 가 세 강을 이룬다면, 북쪽으로 뻗어 가는 성령의 물줄기가 ‘생명의 강’을 이루는 셈이지요.

태백은 여러 면에서 북한 개방의 때를 준비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에요. 먼저 태백에는 북한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들이 많이 계세요. 게다가 산림 비율이 80%가 넘죠. 그래서인지 지형과 기후가 제가 살던 고향과 비슷해요. 북한은 남한보다 산림 비율이 훨씬 높거든요. 2017년 무렵 〈타임(Time)〉이 ‘아시아에서 가장 청정한 땅(Organic)’으로 북한을 꼽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훗날 ‘무무공간이’ 로컬 관광의 롤 모델로 기능하면 좋겠어요. 어떤 인위적인 것도 가미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이 관광 상품화되어 더 많은 사람이 체험할 수 있도록요. 농업과 관광과 체험이 어우러지는 ‘무무공간’에서 사람들이 누리고 경험한 것들이 좋은 사례가 되면 좋겠습니다.



창업하신 사업체 중 가장 롱런하고 있는 ‘스페이스 요벨’이 사회적 기업으로서 좋은 사례를 남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성과를 거두셨나요?


처음 카페를 창업할 때 탈북민 청년들을 ‘사장’으로 세우는 비전을 품었어요. 제가 태백으로 들어오면서 그 꿈을 실현했죠. 빚지지 않고 탈북민 청년들의 ‘자립’을 이루었다는 점이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이에요. 저 나름의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이스 요벨’이 거둔 성과가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닐 텐데요. 그동안 겪은 어려움은 무엇인지, 또 탈북민의 ‘자립’을 이루는 데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창업 초기에는 회사와 교회 문화가 혼재되어 있었어요. 일정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남과 북의 ‘문화 충돌’을 극복해야만 했죠. 문제 해결 중심의 직설 화법을 쓰는 북한 청년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어려워하는 남한 청년들이 많았거든요. 물론 성향 차이도 한몫했을 거예요.

결국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존중’이에요. ‘나의 나 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지난 5월부터 무무공간에서 시작된 북클럽에서 다룬 파커 J. 파머의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는 ‘서클 오브 트러스트(circle of trust)’라는 개념이 나와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출신, 성장 배경 등을 비롯해 모든 부분을 존중받을 때 신뢰의 영역이 생겨나고 그 신뢰 안에서 나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으며, 그 연약한 부분이 온전히 품어졌을 때 깊은 신뢰가 형성된다고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탄탄한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수 있죠. 교회든, 학교든, 직장이든 이 ‘서클 오브 트러스트’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탈북민들의 정착 과정에서 빚어지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물질적 지원과 더불어 정서적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은데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또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시스템적으로는 충분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문제인 것 같아요. 국가적 차원에서 탈북민 자립 시스템은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거든요. 물질적인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서클 오브 트러스트’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예요. 이 사회의 저변에는 탈북민을 향한 상대적 우월감과 적대감이 깔려 있어요. 그 부분을 걷어 내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형성될 필요가 있어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동정의 태도보다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빌립보서 2:6-8)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 수평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다면 좋겠어요.



대표님도 고향 땅을 떠나온 후 오랜 시간 정서적인 고립감과 아픔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남는 경험이 있는지요?


중국에서 체류한 5년 동안 목동으로 노예처럼 일했던 시절이요. 급여 한 푼 못 받고 온갖 욕설에 착취를 당하며 살았죠. 어느 해 추석 때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는데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더라고요. 그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나님을 영접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2006년이에요. 6개월 정도 룸메이트로 지내던 미국 선교사 아론이라는 친구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선교를 위해 북한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친구였죠. 어느 날 그 친구가 한겨울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맨바닥에서 베개도 안 베고 이불도 덮지 않고 잠자는 걸 보고 왜 침대에서 자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북한에 가면 감옥에 갈 수도 있잖아. 감옥에는 침대도 이불도 없으니까 그때를 대비해 미리 적응해 두려는 거야.” 제 삶의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죠. 아론의 순전한 마음에 감화되어 ‘하나님 나라’를 목적 삼은 삶을 살게 되었어요. 이후로도 여러 외국인 친구들이 제 신앙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같은 ‘디아스포라’로서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비전과 삶을 나누며 우정을 다져 갈 수 있었어요.


한번 마음에 품은 도전 과제가 있으면 정면 돌파하는 성격이신 것 같아요. 이러한 성격 덕분에 얻은 가장 큰 유익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덥석 움켜잡죠. 실패하면 또다시 도전하고요.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면 기회가 왔어도 우물쭈물하다 놓쳐 버렸을 텐데 과감히 도전하는 성격을 지닌 덕분에 누린 유익이죠.



남한 여성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셨어요. ‘통일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 사업가이자 사역자로서 각 역할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고 싶으세요?


각각 10점 만점에 5점이요. (너무 박한 점수 아니냐고 반문하자) 자녀 양육에 한해서는 7, 8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로서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5년 정도 저희 부부가 풀타임으로 육아를 한 것이 가장 잘한 결정 같아요.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자녀에게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왕따당할까 봐 걱정돼서죠. 오히려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한반도 지도를 보여 주면서 제 고향과 아내의 고향을 계속 알려 줬어요. 또 북한에서 사용하던 어휘도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제가 어려서 경험한 것들을 전수해 주기도 하죠. 저희 아이들이 남북의 문화를 동시에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해요.



‘통일’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덧붙여 ‘하나 된 한반도’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두 국가가 사회적·문화적으로 동등해지고 또 무르익을 때까지, 그러니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썸’을 좀 타다가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동안 단절된 서로의 문화를 충분히 알아 가고 또 존중하는 과정들을 겪은 뒤에요. 그 전까지는 각각의 국가로 존재하되, 서로 제약 없이 왕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날이 오면 가족들과 모여 앉아 한 상에서 밥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제가 꾸려 온 목장 경험을 살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원도 세포군의 ‘세포목장’과 협력하고 연대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리스도인들이 통일 또는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함과 동시에 우리 안의 갈등, 우리 안의 장벽부터 내려놓을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어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존중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아마 하나님이 ‘하나 되는’ 선물을 주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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