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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을 기다려요
Guideposts 2024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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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을 기다려요
“난독증이 있고, 계산에 밝지 못해요. 무얼 하든지 어설프고요.” 송미경 작가는 자신의 부족함을 서슴없이 나열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부족한 게 많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언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부족한 게 많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일까. 그가 일컬은 ‘여기’에는 십수 년에 걸쳐 쓰고 그린 무수한 작품들, 가르치고 이끌어 온 후학들, 기도로 품어 온 영혼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한 게 많아서’ 거둘 수 있었던 열매였다. ‘펜’을 사명의 도구 삼아 ‘여기’에 이르는 동안 그가 붙든 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것뿐. 작가, 교수, 사모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울고, 묻고, 따지며 한 발짝 한 발짝 새겨 온 그의 발자취는 그래서 더욱 깊고 선명하다.
2008년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하며 동화작가로 데뷔하셨어요. 등단 시기와 별개로 작가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그보다 먼저일 것 같은데요. ‘작가’로의 부르심이 언제 있었나요?
스물세 살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그 무렵 저는 곤고한 마음으로 서울 근교의 기도원을 떠돌아다녔어요.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힘들었는데도 기도원 성전에서 자고 깨며 예배를 드렸어요. 새벽부터 한자리에 앉아 ‘이번 예배에서는 하나님을 만날지도 몰라’ 이런 간절한 기대감으로 예배했죠. 부르심을 받은 그날은 하나님한테 좀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내 삶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것 같고,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붕붕 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는 잘못 태어난 하자품 같고, 이질적인 물질 같았어요. 도대체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 서운해할 것까지는 없는데(웃음) 그때는 아직 어렸나 봐요. 울컥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짐을 다 싼 뒤에 기도굴에 가서 하나님께 서운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오늘은 성탄절 전날이고요, 저 스물세 살이에요.” 그러고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데 뭔가를 잘못 밟아서 넘어진 거예요. 그때 무릎이 점퍼 지퍼에 찍혀서 너무 아팠어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어요.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아, 하나님이구나. 알겠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그 음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 봐요. 그 순간 저는 “펜이니이다” 하고 대답했어요. 소리 내서 그 말을 하는데 발음이 어렵더라고요. 그냥 “펜입니다” “펜이요” 이렇게 해도 되는데 잘 보이려고 그렇게 대답한 거잖아요. 아마 하나님이 웃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펜’이라고 답하셨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미술을 하려고 했고, 이후에는 영화를 하고 싶어 했고, 글도 쓰고 싶어 했지만 좌절됐고, 여러 가지 꿈이 있었거든요. ‘펜’이라고 답하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그래서 ‘펜’이라고 대답했죠. 그러고 나서 생각했어요. ‘아, 나를 작가로 쓰시겠구나.’ 이어서 내 안에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되지?’ 생각해 보니 작가가 될 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거예요. 일단 기본적인 문장 구사력이 서툰 것은 물론이고, 책 읽는 속도도 엄청 느렸거든요. 동생이 전집 30권을 읽는 동안 저는 간신히 1권을 읽는 아이였어요. 학습력도 떨어졌고요.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죠. ‘한 50세쯤 되면 작가로 쓰임받겠구나.’
그런데 50세가 되기도 훨씬 전에 작가가 되셨어요.
등단 당시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었으니까 한참 당겨 주신 셈이죠. 그만큼 몇 배속으로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해서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었어요.(웃음) 특히 기도 훈련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간 하나님을 알아 가기 위해 무던히 애썼어요. 하나님이 작가로 쓰신다고 하셨으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때가 23세였으니까 50세가 되려면 한참 남은 거잖아요. 느긋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실 날을 기다리며 그 시간을 저 나름대로 훈련 기간으로 삼았죠. 20대 때는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현 하이패밀리)’에서 간사로 일하기도 하고, 신학원에 들어가 공부도 했어요.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 채 무기력한 삶을 살던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작가의 사명을 받은 사건이 이제까지 저를 이끌어 온 것 같아요. 제 삶의 모든 것이 바뀌어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마음속에 계속 있더라고요.
하나님이 왜 작가로 부르신 것 같나요?
역설적이지만 글을 쓰는 일이 저에게 가장 힘들고 또 연약한 부분이기도 한데, 굳이 작가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재능이 많은 다른 작가들과 달리 저는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이 힘들어했어요. 재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정도로요. 얘가 평생토록 기도하게 하려면 무슨 직업을 줘야 할까 하다가 작가를 시키셨구나 하고 깨달았죠. 무엇이 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제게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겨서 사용해 주셨다는 것을 늘 생각하죠. 하나님이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저를 사용하셨다는 것도요. 지난 시간 동안은 아등바등 전쟁하듯이, 부족한 채로 버텨 오면서 지나왔거든요. 믿음으로 나아가다가도 문득 지금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왜 내 글은 이것밖에 안 되는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하며 스스로를 저울질하곤 했어요. 그런데 50세에 진입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싹 다 내려놓게 됐어요. 그래서 조금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50세가 되면서 새로운 국면의 ‘작가’로 서게 되셨군요. 그런 의미에서 데뷔 16년 만에 발표하신 ‘첫’ 장편소설이 더 뜻깊게 다가옵니다. 왜 ‘소설’인가요?
딱 50세가 되던 작년에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고, 또 다소 지쳐 있었어요. 창작보다는 교육 쪽으로 일을 확장해 보려는 마음을 먹고 있던 그때 제 남편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라”고 일깨워 주더군요. 그 말을 듣고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소설을 써야겠다 싶더라고요. 사실 아동문학만 계속해 왔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일이 막막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마음이 평안했어요.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걸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꾸미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써 보자 했어요. 푹 빠져서 쓰는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올해 소설이 출간되고 나니 새로운 길로 들어선 기분이에요. 사역이나 삶이나 모든 면에서 ‘나’를 바꾸어야 하는 그 순간이 올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정 기도를 했었고, 또 앞으로의 방향을 새롭게 세워 나가는 중이었거든요. 이전까지는 아동문학과 일반 분야에서 글을 써 왔는데, 앞으로 다른 차원의 일들을 해 나가라고 미리 마음을 준비시켜 주신 것 같아요.
텍스트와 이미지를 넘나들며 다작(多作)을 해 오셨어요. ‘의자’에 사로잡히던 시기에는 의자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죠. ‘의자’의 신앙적 상징성은 무엇인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말씀하셨잖아요. 인간이 쓰고 있는 사물 중에 의자처럼 아무 때나 몸을 다 맡길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힘들 때 “잠깐 쉬자” 말하면서 의자에 앉잖아요. 그런 면에서 의자는 진정한 ‘안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기다림’의 의미가 있어요. 신앙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또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존재죠. 그런 의미에서 의자는 앞서 나가지 않고 오래 참아 기다리는 겸손의 상징 같기도 해요. ‘누구나’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넉넉한 마음 또한 의자의 속성이죠. 시각적으로는 그림자가 제일 예쁜 가구라고 생각해요. 시간대에 따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거든요. 하나의 사물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줘서 가장 재미있는 사물 같아요. 미적으로는 상상력을 가장 많이 일으키고요. 하나 더, 의자는 균형이 안 맞으면 쓸모가 없어져요. 다른 가구는 균형이 안 맞으면 뭔가를 괴어 쓸 수 있는데, 의자는 다리 하나만 못 써도 버려지거든요. 우리의 신앙과 비전 그리고 삶 전반에서도 무엇 하나가 뛰어난 것보다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돼요.
지난한 훈련 과정 중에 가장 격려가 되고 동기부여가 된 사건이 있다면요?
처음 쓴 작품으로 상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하셨구나’ 했어요. 제가 원래 막 글을 잘 쓰던 사람이 아니니까 주변에서는 우연히 된 거다 이런 말이 많았거든요. 그러던 중 2014년에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고, 그다음 해인 2015년에 ‘창원아동문학상’을 받게 되었어요. 작가가 된 이후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나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 번씩 상을 주셨어요.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거죠.
또 하나의 동기부여는 중보자들의 기도예요. 대학원에서 만난 벗들과 함께 중보자로서 우정을 나누며 기도로 서로의 삶을 돕거든요.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채로 작가가 되고 나니 너무 두려워 뒤늦게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숭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입학 후 동화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고 당황했지만요. 난독증 때문에 개설 과목을 잘못 보고 무작정 입학 원서를 넣은 제 불찰이었죠. 당시 동화를 배울 길이 없어 뜻이 맞는 몇몇 학우들과 아동문학 스터디를 결성했어요. ‘수업시대’라는 이름으로요. 공부보다는 거의 예배와 기도로 시간을 보냈죠. 저를 포함해 세 명이 아직까지 ‘수업시대’ 모임을 이어 가고 있는데, 세 사람 모두 숭실대에서 각각 아동문학, 웹소설, 출판을 수년째 가르치고 있어요. 연약한 우리를 그 자리에 세워 주신 것도 하나님 은혜죠. 글쓰기 과정에서 저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두 중보자의 기도이고, 저도 이들의 사역에 그런 중보자로 서 있어요. 저의 자랑거리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신앙 여정 가운데 하나님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시기는 언제이며, 그 시기에 쓴 작품은 무엇인가요?
중간중간 엇나가고 반항할 때도 있었지만, 저는 무슨 일이든 항상 하나님께 먼저 말씀을 드려요. 떼쓰고 말썽을 부릴지언정 사람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죠. 원망을 해도 하나님께 먼저 하고요. 저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는 사랑하는 존재들을 위한 중보로 기도를 시작할 때가 많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디모데후서 4:2)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하나님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시기는 2012년, 2013년 무렵이에요. 대학원을 마친 뒤 생계난과 건강 문제로 어려운 일들이 몰아닥쳐서 모든 것이 다 막힌 느낌이었어요. 때마침 어느 대학의 행정직 자리를 제안받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했죠. 하나님이 작가로 삼아 주시긴 했지만, 그걸 감당하기에는 제 재능이 바닥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에 대한 한계를 느낀 거죠. 그때 ‘마지막’으로 책 한 권만 쓰고 그만두겠다는 결심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다시금 사명을 일깨워 주는 남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고요. 동화 열 편의 제목 리스트를 벽에 붙여 놓고 글을 써 나갔어요. 아침 금식을 하면서요. 그때 썼던 단편동화들이 『복수의 여신』 『어떤 아이가』로 출간되었고요. 마지막 기회로 삼은 그 시간 덕분에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죠.
남편분의 권유로 동화를 응모해 작가가 되셨는데, 이후 창작 활동에도 남편분의 격려와 지지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세 자녀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요.
신학생인 남편과 무일푼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빠듯했어요. 게다가 자녀가 셋이잖아요. 별수 없이 생업에 뛰어들어 다른 일들을 간간이 했는데, 유일하게 잘한 일이 옷 장사였어요. 그런데 가장 잘되고 있는 그 순간에 남편이 그만두게 하더라고요. 당신 사명이 그게 아닌데,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가 힘들어서 다른 길로 나가려고 작정하면 남편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말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등단작이기도 한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집에 있으면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학교에 가야 해요?”라는 첫째 아들의 질문에 영상처럼 펼쳐진 이야기를 쓴 것이고요, 알려진 대로 ‘어른 동생’은 “엄마, 사실은 나 어른이야”라고 말한 막내아들의 말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에요. 『복수의 여신』 『어쩌다 부회장』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는 딸과 대화를 나누다가 영감을 얻어 쓰게 되었고요. 아이가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했어요. 덕분에 ‘동화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틀에 연연하지 않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죠.
직업적으로는 ‘창작자’와 ‘교육자’ 사이를 오가며, 한편으로는 세 자녀의 ‘엄마’이자 한 교회의 ‘사모’로서 이중 돌봄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작가스러움’과 ‘사모’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한 적은 없나요?
저의 ‘작가스러움’은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하는 점인 것 같아요. 공상을 하기에는 자원이 좀 풍부한 편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현실 생활을 하기에는 다소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 ‘교회’ 안에서 보통 사모라는 틀이 가지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해요. 하지만 저에게는 사모로서보다는 하나님 앞에 선 제가 더 중요해요. 교회도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안의 질서가 있잖아요. 공동체를 잘 꾸리기 위한 요령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 부분에서는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요령을 부려서 뭐가 잘되는 것보다 그저 예배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동안 써 온 작품 중에서 딱 한 문장만 남긴다면 어떤 문장을 꼽고 싶으세요?
“언젠가 내게 한 번은 이상한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의 204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언젠가 내게 한 번은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항상 있었어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은 ‘갑자기’ 같아요. 갑자기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갑자기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갑자기 삶이 바뀌고…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것. 우리가 광야를 지나면 다른 존재가 되잖아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죠. 화학 기호 자체가 바뀌는 그런 역사가 저에게 있었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번 바뀌었다고 해서 완성되는 존재는 없으니까요.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신앙을 이어 나가면서 계속 갱신해야 하죠. ‘그냥’ 신앙생활하는 건 아주 쉬운데 ‘제대로’ 하려면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끝으로 신앙인로서 하고 싶은 창작 활동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덧붙여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도 말씀해 주세요.
그동안 저는 기독교인을 위해서 부름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기독교인을 위해서 글을 쓰면 아무래도 기독교인들만 보게 되잖아요. 모두가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제 사명인 것 같아 그 길을 따라왔고 또 재미있어하면서 활동해 왔어요. 하지만 오십 이후의 삶은 성경과 관련된 기독교 문서 사역으로 좀 더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2의 시대를 맞는 기분이고요. 세상의 길이 아닌 믿음의 길을 걸어간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에게라도 마음에 깊이 닿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그 이야기가 나를 움직였어, 그 문장이 나에게 위로가 됐어,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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