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LONGER, LIVING BETTER
Underwater Awakening
바다에서 만난 ‘진짜 나’
Guideposts 2024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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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water Awakening
바다에서 만난 ‘진짜 나’
Guideposts 2024 | 9
How one of nature’s most fragile undersea creatures changed a diver’s life
지구상에서 가장 연약한 바다 생물 중 하나가 어떻게 다이버의 삶을 바꿨을까?
By ROGER HANSON, Moreno Valley, California
로저 핸슨 캘리포니아주 모레노밸리
Dive a few feet underwater and you’re in another world. It’s quiet down there. You can hear yourself think. If you’re me, you stop thinking so much. You slow down. Look around. See the world maybe a little more the way God intended.
I’m a restless guy. Married four times. Moved all over the country. Grew up on a farm and later worked as a teacher and coached football, wrestling and track.
Scuba diving is what I keep coming back to. I learned to dive 30 years ago. I’ve been a diver almost half my life. No matter where I live, I find water and dive. I’ve chainsawed holes in the Wisconsin ice and plunged in.
I always say I’m a C-minus on land but a Mensa genius underwater. I don’t mean I get smarter; I mean I become a better person down there. I’m kinder. More patient. More tolerant and observant. My rough edges smooth out, and I become the calm, generous guy I try—and mostly fail—to be on land.
I never knew why that was until a few years ago. That’s when I made a tiny discovery during one of my routine dives. I was in shallow water off Long Beach, an industrial port city south of Los Angeles. I looked down and saw a bright orange seahorse, 4½ inches long, hovering near the ocean floor.
That seahorse didn’t belong there. The waters near Long Beach are too busy and too cold. Seahorses are shy and prefer warmer water. San Diego marks the northern limit of Pacific seahorse habitat, some 110 miles away.
I swam closer, fascinated and enchanted by what I was watching. I didn’t know it then, but that little seahorse had just changed my life.
바닷속으로 몇 미터만 들어가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곳은 고요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소리까지 들릴 것이다. 당신이 나라면,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 당신은 속도를 늦춘다. 주위를 둘러본다. 어쩌면 조금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방식대로 세상을 볼지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결혼을 네 번이나 했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농장에서 자란 나는 교사로 일하면서 미식축구, 레슬링, 육상 감독을 병행했다.
스쿠버다이빙은 내가 놓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 다이빙을 배운 것은 30년 전이다. 반평생 다이버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어디에 살든 물을 찾아내 다이빙을 한다. 위스콘신에 살 때는 전기톱으로 얼음에 구멍을 내고 물에 뛰어든 적도 있다.
나는 육지에서는 C- 인생이지만 바닷속에서는 멘사 회원급 천재라고 말한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똑똑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더 친절해지고, 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된다. 더 관대해지고, 더 주의 깊은 사람이 된다. 모난 부분들이 부드러워지면서 차분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육지에서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다.
몇 년 전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늘상 하던 다이빙 중에 아주 사소한 발견을 한 뒤였다. 당시 나는 LA 남쪽의 산업 항구 도시인 롱비치의 얕은 물속에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밝은 주황색의 해마가 보였다. 10cm 남짓 되는 길이의 해마는 바다 밑바닥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해마는 거기 서식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롱비치 근처 바다는 너무 붐비고 물도 너무 차다. 해마는 수줍음이 많고 따뜻한 물을 선호한다. 샌디에이고가 태평양 해마 서식지의 북쪽 한계선이다. 이곳은 거기로부터 180km 가까이 떨어진 곳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매료되어 홀린 듯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조그만 해마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Wind the clock back to 1950, when I was born in Oelwein, Iowa. A town about as far from the ocean as you can get. Still, my sister and I grew up surrounded by nature and the cycle of life. We played in cornfields, watched calves being born and learned gardening from Mom.
Dad loved farming, but he couldn’t make the financial part work. We ended up moving to Council Bluffs, where Dad drove a truck and I attended high school. I knew my way around a farm but struggled in school. Kids made fun of me, and I burned to make something of myself.
I squeaked through college, but I had no idea what to do after graduating. I wound up teaching. I enjoyed the work and the students. And the job was portable. I’ve taught school in Wisconsin, Florida and California.
For years, I found it hard to settle down. I was always chasing that elusive something that would make me feel good about myself. I moved around. Cycled through relationships. Tried out different roles at school: teaching, coaching.
Just before I turned 40, I took a vacation to Mexico. I was at one of those beach resorts where you dive with tropical fish. On a whim, I put on a wet suit and regulator and slipped into the water.
My world transforme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the restless engine churning inside me slowed down. The water was quiet. Colorful fish darted around like jewels. The sound of my breathing and the swish of fins were all I heard. It was like a place apart. I didn’t want to leave.
My top priority when I returned home to Wisconsin was getting back in. I learned to scuba dive and went diving every chance I got. Eventually I moved to California to be closer to the ocean.
I began to notice how different I felt and acted underwater. I’d pretty much stopped going to church, but I sensed something holy down there. Or someone. In that presence I was able to relax, look around, not take everything so personally.
Back on land, I was just as ornery and impatient as ever. I didn’t like it but didn’t seem able to change it.
내가 아이오와주 올와인에서 태어난 해인 1950년으로 시간을 돌려 보자. 그곳은 바다와는 거리가 아주 먼 동네다. 그래도 누이와 나는 자연과 생명의 순환에 둘러싸여 자랐다. 옥수수밭에서 놀고 송아지가 태어나는 장면도 봤으며 엄마에게 정원 가꾸는 법도 배웠다.
아버지는 농사짓는 일을 사랑하셨지만 그 일로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카운실블러프스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 일을 하셨고,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농장 일은 제법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를 놀렸고, 나는 성공을 향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겨우 대학에 가는 데 성공했지만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일도, 학생들도 만족스러웠다. 이 직업은 장소를 옮기는 것도 쉬웠다. 위스콘신, 플로리다, 캘리포니아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오랫동안 정착하는 게 쉽지 않았다. 늘 자존감을 올려 줄 만한,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짧은 연애를 반복했다. 학교에서도 다른 일들을 시도했다. 수업과 감독.
마흔이 되기 직전 멕시코로 휴가를 떠났다. 열대어들과 헤엄칠 수 있는 어느 해변 휴양지에 갔다. 충동적으로 잠수복과 조절 장치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안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엔진의 속도가 느려졌다. 물속은 고요했다. 색색의 물고기들이 보석처럼 잽싸게 움직였다. 내 숨소리와 지느러미의 휙 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동떨어진 세상 같았다. 그곳을 떠나기 싫었다.
위스콘신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최우선 순위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바다에 더 가까이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점차 물속에서 내가 얼마나 다른 기분을 느끼는지, 다르게 행동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두다시피 했는데, 물속에 있으면 어떤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니면 성스러운 존재가. 그 존재 안에서 편안해졌고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육지로 올라오면 다시 성미가 고약해지고 인내심도 사라졌다. 그런 점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One day, 11 years after I learned to dive, I was off the coast of Laguna Beach in Southern California. It’s rocky there, and I was watching fish dart in and out of crevices. Suddenly I noticed a huge shape looming beside me.
It was a gray whale, about 40 feet long, just a few feet away. I should have been terrified. That whale could have killed me with a flick of its tail.
Instead, I looked in the whale’s eye. The whale seemed to stare back at me and into my soul. There was no condemnation in that gaze. The whale moved on, and I swam in a daze toward the surface.
After that, I began diving every day. I even lived by the beach in my white minivan for a while. I was working at a school in Long Beach, so I mostly dived there. It’s not a beautiful spot, but I didn’t care. I just wanted to be underwater.
To help some octopi I found living in the bay, I created a small habitat out of discarded toys lying on the ocean floor. I called the habitat Littleville. Maybe I wished I lived in Littleville.
One day, checking on Littleville, I noticed something small and orange hovering in the sea grass a few hundred feet away. A seahorse.
I knew that seahorses didn’t belong there. I also knew an unusual pulse of warm water had traveled north to California that summer. Maybe the seahorse had drifted on the current and was trying to eke out a living in Long Beach.
I hovered, not wanting to scare the seahorse away but desperate for a closer look. It was so small. So helpless. The water wasn’t very deep. Beachgoers could paddle out here and churn everything up.
Finally I had to surface. I returned the next day and almost every day thereafter to check on the seahorse. A few months later, it was joined by a companion! Seahorses often form close attachments to one another.
Winter was approaching, and I feared the sea grass wouldn’t give the seahorses enough protection. I gathered sticks, pine branches and other bits of plant life on land and used them to build a sheltered area for the seahorses on the bay floor. They moved right in.
Soon I discovered more seahorses in the area and built habitats for them too. I gave the seahorses names like Deep Blue, Daphne and Bathsheba. I visited them every day. Something about them drew me.
잠수를 배운 지 11년이 지난 어느 날, 남부 캘리포니아의 라구나 비치 앞바다에 있을 때였다. 바위가 많은 지역이었다. 나는 물고기들이 바위 틈새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대한 형체가 내 옆에서 어른거렸다.
12m 길이의 회색 고래가 몇 미터 바로 앞에 있었다. 겁이 나는 게 정상이었다. 그 고래가 꼬리 한 번만 흔들어도 죽을 수 있었다.
대신 나는 고래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 눈을 마주 보는 그 고래가 내 영혼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시선에 비난은 담겨 있지 않았다. 고래는 그냥 지나쳐 갔고, 나는 멍한 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후 매일 잠수를 했다. 바다 근처에 살기 위해 한동안 내 흰색 미니밴에 기거하기도 했다. 롱비치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잠수도 대개 그곳에서 했다. 특별히 아름다운 곳은 아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물속에 있고 싶었다.
그 지역에 사는 문어를 발견하고는 그들을 돕기 위해 해저에 버려진 장난감들로 작은 서식지를 만들었다. 나는 그 서식지를 ‘리틀빌’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내가 리틀빌에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리틀빌을 확인하고 있을 때 몇 십 미터 떨어진 해초에서 서성대고 있는 조그만 주황색 형체가 눈에 띄었다. 해마였다.
이곳은 해마가 서식하는 데가 아니었다. 이상 해류 흐름으로 따뜻해진 바닷물이 그 해 여름 캘리포니아까지 북상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 해마는 해류를 따라와 이곳 롱비치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안달이 난 나는 해마가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해마는 너무나 작았다. 너무나 무력했다.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첨벙거리면서 마구 휘저을 수도 있었다.
수면으로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부터 거의 매일 해마를 확인하러 갔다. 몇 달 뒤 해마에게 친구가 생겼다! 해마들은 종종 서로 끈끈한 유대를 형성한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초가 해마를 지켜 주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육지에서 막대기, 소나무 가지, 이런저런 나무 잔해들을 모아 해저에 해마를 위한 은신처를 만들었다. 녀석들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곧 더 많은 해마들을 발견했고 그들을 위한 서식지도 더 만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딥블루, 다프네, 밧세바 같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매일 녀석들을 보러 갔다. 녀석들의 무언가가 나를 매료시켰다.
I kept detailed notes about the seahorses and water conditions in my dive log. I got so excited, I shared the observations with marine biologists in the area. Normally they wouldn’t listen to some random diver. But the presence of this particular species—the Pacific seahorse—so far north caught their attention. They came to see for themselves, and before I knew it I was appearing on local TV news.
The attention went to my head. At last, the respect I had been craving! I took tons of pictures, posted online, hammed it up for the cameras.
One day I dove down to visit my seahorses and…they weren’t there! I searched everywhere. At last I saw them deep in the recesses of their habitat. It was obvious they were hiding. My attention had become too intrusive. I had scared them away.
From that day, I backed off and let the seahorses call the shots. I stopped taking pictures and posting online and, instead, just hovered nearby, observing. Slowly I came to know each seahorse’s daily rhythms and personality.
The more I watched, the more I realized those seahorses were the exact opposite of me. They were quiet. Calm. Patient. Most of all, they were content. They didn’t rove around, seeking the next best place or food source. They moved into the bay, found mates and settled down. They faithfully played their role in God’s ocean drama.
What was my role? For so many years, I had devoted every spare minute to being underwater. Why? What did I find down here?
The answer was obvious. What I found underwater was God. It was God who spoke to me in the silence I heard in the ocean. God who gazed at me in the eye of the gray whale.
And now God was showing me yet another side of himself in the lives of these fragile but faithful seahorses.
I struggled on land because I found it hard to admit that I wasn’t so different from the seahorses after all. I too was loved by God because God made me and redeemed me. If I truly accepted that, I could stop my lifelong search for validation. God’s love was enough for the seahorses. Maybe it could be enough for me.
For almost five years, I have shepherded the seahorses. I observe, take detailed notes and help scientists understand this fragile species.
I keep the exact location of their habitat secret. Once, I even had to move parts of it after a bunch of high school football players got dangerously close, blowing off steam at the beach.
Maybe one day the seahorses will leave. I’m okay with that. For me, the seahorses have already done their work. In their quiet, unassuming way, they took hold of my life and turned it in the right direction. I’ll keep diving, and I’m sure God will give me another job.
I still work on my manners above water. But the restlessness? The insecurity? Gone.
The ocean knows the real me. God knows. He loves me because he made me, and he shows me where to go. I’ll follow him anywhere. I strap on my tanks, start my regulator and plunge in.
나는 잠수 일기에 해마와 해수 상태에 관해 상세히 기록했다. 너무 신이 나서 지역 해양생물 학자들에게 내 기록을 보여 주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들은 일개 잠수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해마라는 이 특이한 종이 먼 북쪽 바다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은 해마를 직접 보러 왔고, 어느 순간 나는 지역 TV 뉴스에 출연하고 있었다.
관심을 받자 우쭐해졌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존중을 얻게 되었다! 나는 엄청난 수의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게시했고 카메라 앞에서 과장된 연기를 했다.
어느 날, 내 해마들을 보러 들어갔는데…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구석구석 녀석들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서식지 우묵한 곳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녀석들을 발견했다. 숨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관심이 녀석들을 방해했다. 그래서 겁을 먹고 달아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발 물러나 녀석들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게시하는 일을 그만뒀고, 대신 근처에서 맴돌면서 녀석들을 관찰했다. 서서히 그들 하나하나 일상의 리듬과 성격을 파악하게 되었다.
녀석들을 지켜볼수록 나와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조용했다. 침착하고 인내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만족했다. 이다음 가장 좋은 곳이나 먹이를 찾아 떠돌지 않았다. 그들은 만(灣)으로 이주해 짝을 찾고 정착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다라는 연극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내 역할은 무엇인가? 오랜 세월 나는 틈날 때마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왜지? 여기서 무엇을 찾았지?
대답은 분명했다. 물속에서 찾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고요한 바닷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 분은 하나님이었다. 회색 고래의 눈 속에서 나를 바라본 분도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연약하지만 충실한 해마들의 삶을 통해 당신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주고 계셨다.
내가 육지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나도 이 해마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인정받기 위해 평생 방황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저 해마들은 충분했다. 어쩌면 내게도 충분한지 몰랐다.
5년 가까이 나는 해마들을 지켰다. 관찰하고 상세히 기록하고 과학자들이 이 연약한 존재들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나는 서식지의 정확한 위치를 비밀로 했다. 한번은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들이 바다에서 스트레스를 풀다가 서식지에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간 적이 있어서 서식지 일부를 옮기는 일도 있었다.
언젠가 해마들은 떠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녀석들은 나에게 충분히 주었으니까. 조용하고 겸손한 방식으로 녀석들은 내 삶을 붙잡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 주었다. 나는 잠수를 계속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 다른 일을 주실 거라 확신한다.
여전히 물 밖에서 성미를 고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초조함? 자신감 부족? 모두 사라졌다.
바다는 진짜 내 모습을 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를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만드셨고,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든 그를 따라갈 것이다. 나는 탱크를 연결하고 조절기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0372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181호
Tel. 02-362-4000
(평일 09:00 ~ 17:00 | 점심 11:30 ~ 12:30)
E-mail. guidepost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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