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COMING ADDICTION

The End of the Line

아깝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Guideposts 2024 | 10


OVERCOMING ADDICTION

Guideposts 2024 | 10

The End of the Line

아깝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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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didn’t want to die a junkie. 

But he didn’t know how to live clean

그는 ‘약쟁이’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중독을 끊고 사는 법을 몰랐다. 


By GERRY SOWARDS,  Huntington, West Virginia

게리 소워즈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




The graveyard. This was where drugs and alcohol had led me. I was 34 and had never had a job until now, working at the cemetery. I’d just gotten my first assignment to dig a grave. As if I hadn’t been digging my own grave for years. Smoking pot, drinking beer, dropping out of school. Getting hooked on opioids. Getting in trouble with the law, landing in jail. I was the poster boy for addiction.

I’d fallen into the dead-end life I saw growing up, the only kind of life I knew. The steel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here in West Virginia collapsed in the early 1980s, around the time I was born. There were mass layoffs, factory and mill shutdowns. My hometown of Huntington had been struggling to recover ever since. I grew up on the Southside in public housing, row upon row of squat, dingy apartment buildings where crime ran rampant. As a kid, I saw drug deals going down, fights, shootings.

My mother struggled with addiction. My father divorced her over it when I was in kindergarten. I didn’t see much of him after that. I smoked my first joint in elementary school. By middle school, I was smoking pot or drinking beer every day. When I was 18, a friend turned me on to opioids, pain pills.

Pretty crazy to think I’d ended up here in the cemetery, not in my own grave but digging someone else’s. My boss had given me the assignment that morning.

“Service is tomorrow,” he said, handing me the paperwork. “For now, just go mark the spot.”

I glanced down at the paper. The name jumped out at me. Mandy. I suddenly felt sick. Dear Lord, no, it can’t be.

“Something wrong?” my boss asked.

“Everything’s good,” I said, stuffing the paper in my pocket. I was only two months clean and sober. I couldn’t flake out. I needed this job.

But the sick feeling wouldn’t go away. I knew Mandy through her dad. We lived in the same public housing complex. Mandy was only in her twenties. Long blonde hair. Sparkling turquoise eyes. A sunny personality. And now she was dead. No one had to tell me how she died. Drug overdose. Here in Huntington, when a young person dies, that’s almost always the reason.


공동묘지. 약과 술이 나를 이끈 곳이다. 서른네 살의 나는 공동묘지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첫 번째 임무인 무덤 파는 일이 막 주어졌다. 사실 수년 동안 내 무덤을 파고 살았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고, 학교를 중퇴했다. 오피오이드에 중독되었다. 불법을 저질러 징역을 살았다. 중독의 전형이다. 

자라면서 본 막장 인생의 길을 나도 걷게 되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종류의 인생이었다. 나는 철강과 제조 산업이 무너지던 1980년대 초반에 이곳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났다. 대량 해고와 더불어 공장과 작업장이 폐쇄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내 고향 헌팅턴은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사우스사이드의 공공주택 단지에서 자랐다. 나지막하고 우중충한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선 동네로 범죄가 만연한 곳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약 거래, 싸움, 총격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어머니는 중독자였다.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어머니와 이혼했다. 이후 아버지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내가 마리화나를 처음 피운 건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매일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맥주를 마셨다. 열여덟 살 때 친구의 권유로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를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공동묘지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했다. 내 무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무덤을 파면서. 상사가 그날 아침 그 임무를 주었다. 

“장례식은 내일이네. 지금은 가서 자리만 표시해 놓게.” 

상사가 나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서류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곧바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맨디.’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맙소사, 아니겠지, 아닐 거야.’ 

“무슨 문제 있나?” 상사가 물었다.

“아닙니다.” 주머니에 서류를 찔러 넣으며 내가 말했다. 약을 끊은 지 고작 두 달이었다. 망치면 안 된다. 이 일이 필요했다. 

하지만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맨디의 아버지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공공주택 단지에 살았다. 맨디는 고작 20대였다. 긴 금발 머리. 청록색의 반짝이는 눈. 밝은 성격. 그런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약물 과다 복용. 여기 헌팅턴에서 젊은이가 죽는다면 이유는 그것뿐이다. 


I found her plot, a bit of green among the sea of headstones, and began to mark off the eight-by-three-foot space with small flags. She’d had such promise. I thought of my own son. The life I wanted for him. But one thought crowded out the rest.

This could have been you, Gerry. It should have been you. Except for the grace of God.

Opioids were my thing, and snorting them gave me an even bigger rush than popping pills. I loved how the drugs made me feel, as if I could escape the hopelessness around me. I couldn’t get enough of them. That’s how I got to know Mandy’s dad. He was maybe 20 years older than me, always with a ready supply he was happy to share. We’d sit in his living room and get high while little Mandy watched TV. It never occurred to me the impression we were making on her.

Too late I realized that I was hooked, that drugs had become my problem, not an escape from them. By then I’d dropped out of school. Couldn’t find a job. Everywhere I applied did drug testing. I got a woman pregnant, had a son I couldn’t support. Started getting in trouble with the law—public intoxication, petty misdemeanors.

People told me to get tight with God, that he would free me from my addictions. I’d heard kids talking about Jesus here and there in school, though I never went to church. I’d wanted to, but I couldn’t imagine it being a place I’d be welcomed. There was no way God could love someone like me. My grandmother was a churchgoer, sweet and hardworking, the complete opposite of me. Nana called me Little Gerry because both my Papaw and dad were named Gerry. I felt ashamed being around her. I knew she didn’t approve of the life I was living.

One day when I was 25, I got in a fight with a guy. I was stoned. Got in my van and sprayed gravel all over his car, then rammed it. That’ll teach him to mess with me. The police arrested me. I got 10 days in county.

I’d been locked up before, a day here and there for the petty stuff I’d done. Behind bars, there was no getting around the fact that I was a loser. The last time I’d been thrown in jail, I told myself never again.


그녀가 묻힐 묘지를 찾았다. 수많은 묘비 사이의 조그만 풀밭이었다. 작은 깃발들로 세로 2.4m, 가로 0.9m 공간을 표시해 나갔다. 그녀의 장래는 밝았다. 내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도 그런 삶을 살기 바랐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다른 생각들을 몰아냈다.

‘너도 당할 수 있었어, 게리. 당해야만 했고.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오피오이드는 나에게 잘 맞았다. 코로 흡입하는 것이 알약을 삼키는 것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약에 취했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를 둘러싼 절망에서 벗어난 것만 같았다. 아무리 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맨디의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나보다 스무 살쯤 많은 그에게는 늘 나에게 나눠 줄 약이 있었다. 그의 집 거실에 앉아 취해 있을 때 어린 맨디는 TV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맨디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중독자가 되었고, 약물로 인해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약물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이미 늦었다. 그즈음 학교를 중퇴했고,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지원하는 곳마다 약물 검사를 했다. 한 여자를 임신시켜 아들까지 낳았는데 부양할 능력도 없었다. 불법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공공장소 주취. 사소한 경범죄들.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 줄 거라 말했다.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긴 했지만, 교회에 간 적은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런 곳에서 나를 환영해 줄 리 만무했다. 나 같은 인간을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가 없었다. 교회에 다닌 할머니는 다정하고 부지런한 분이셨다.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꼬마 게리라고 불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이름이 게리였기 때문이다. 할머니 옆에 있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이렇게 사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스물다섯 살의 어느 날 어떤 사내와 싸움이 붙었다. 나는 만취 상태였다. 내 밴에 올라타 그의 차에 자갈을 뿌린 뒤 들이받았다. 

‘나랑 엮이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겠어.’ 

그 길로 경찰에 체포되어 10일 동안 수감되었다.

이전에도 사소한 잘못들로 여기저기서 하루 정도 유치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철창 뒤에서 내가 패배자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마지막으로 철창에 갇혔을 때 다시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Now here I was, less than a year later. Hearing that cell door clang shut was like the final confirmation that I was no good to anyone. That I had nothing to live for. This was the end of the line.

I was the only prisoner in my cell. Early one morning, I took the sheet from my bunk and twisted it until it wasn’t much thicker than a rope. I made a loop, just large enough to slip around my head, then ran one end of the sheet around it a couple times to make a noose. I was about to tie it to the upper bunk rail when I heard a booming voice. 

“Sowards! You got mail!” A guard.

I dropped the sheet, hoping he wouldn’t notice. He handed me a square white envelope and left. Besides my mother, no one even knew I was in jail. She definitely wasn’t the letter-writing type.

I tore open the envelope, my hands shaking. “Dear Little Gerry,” the note read. Nana.

“You may think you’re all alone and forgotten,” she wrote. “But you’re not alone. You’re in my heart and prayers every minute. And God will never leave you or forget you. No matter what.”

I had no idea that I meant that much to Nana. To anyone, frankly. I untied the noose. I couldn’t do this to my grandmother. It would break her heart.

Maybe that’s why I didn’t go see Nana when I got out of jail. I didn’t deserve her love. I went right back to drinking and using. For years. But there was more of an edge, a desperation to it. Before then, I got high to feel good. Now I just wanted oblivion.

Sometimes I lived with my mother. Sometimes I crashed on a friend’s couch. Sometimes I slept on the banks of the Ohio River with the homeless folks. A kind of tent city, only I didn’t have a tent. It was a nasty, dirty place. Freezing cold in the winter. Blistering hot in the summer. I couldn’t imagine the effect our blood had on the mosquitoes that swarmed us.


다짐을 한 지 1년도 안 돼 다시 들어왔다. 감방문이 철컹 닫히는 소리가 내가 더는 그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들렸다.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이곳이 내 삶의 종착지였다. 

감방에는 나밖에 없었다. 어느 이른 아침, 침대 이불을 걷어 내 밧줄 두께로 꼬았다. 머리가 들어갈 정도의 고리를 만든 다음 이불 한쪽 끝으로 고리를 2번 더 감아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것을 이층 침대에 묶으려던 찰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소워즈! 우편!” 

교도관이었다. 그가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이불을 내려놓았다. 교도관은 하얀색 네모난 봉투를 건넸다. 내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은 어머니 말고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편지를 쓸 분이 아니었다. 

봉투를 뜯어 열었다. 손이 떨렸다. 

“사랑하는 꼬마 게리.”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할머니였다. 

“어쩌면 네가 혼자라고, 모두가 널 잊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넌 혼자가 아니란다. 넌 매 순간 내 마음과 기도 속에 있어.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널 결코 떠나거나 잊지 않으실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이토록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 누구에게도. 올가미를 풀었다. 할머니에게 이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마음이 찢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출소했을 때 할머니를 뵈러 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곧장 음주와 약물로 돌아갔다. 수년 동안.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통렬함, 절박함이 있었다. 전에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취했다면 이번에는 그저 망각하고 싶었다. 

가끔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떤 때는 친구 집 소파에서 지내기도 했다. 오하이오 강둑에서 노숙자들과 자기도 했다. 그곳은 일종의 텐트촌이었는데, 나는 텐트가 없었다. 지저분하고 불결한 곳이었다.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이 춥고,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더웠다. 우리의 피가 모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몰라도 모기 떼가 달려들었다. 


One night, I was so miserable that I cried out to Nana’s God. Please, I don’t want to die like this. I have a son. I want him to be proud of me.

But the drugs were stronger. Stronger than me, for sure. Stronger than God, I suspected. I tried AA. It didn’t work, not for me.

I went to the methadone clinic, trying to wean myself off the opioids. It didn’t take, but I didn’t know where else to turn. I was headed to the clinic one day when I met a woman named Sassy. She was going to a rehab on the same street. “You should go,” she said. “It’s helped me get clean.”

“That’s not really my thing,” I said.

“Okay, nice meeting you,” she said. Then she was gone.

One night, I was sober enough to get a bed at the mission instead of the tent city. A guy I knew, a drunk like me, stumbled over to my bed. “I never talk to God, and I never pray,” he said, “but something’s telling me to pray with you.” He put his hand on my shoulder. “God, open the door to get this man the help he needs.”

Was this a message? Like the one from Nana?

The next morning, I woke up with a pounding head, needing a pint of something bad. I was a block from the liquor store, right outside McDonald’s, when I saw Sassy. “Hey, what are you doing?” she said.

“About to get a buzz on,” I said.

“Let me buy you some breakfast first,” she said. “You want a drink after we talk, I’ll buy it for you.”

How could I say no to that? I took a big bite of a sausage, egg and cheese biscuit, and my eyes fell on the big silver cross hanging from a chain around her neck. Was this another message? Another message from God?

We finished eating. “You’ve made it this long without a drink,” Sassy said. “Why don’t you come to AA with me?”

My craving for alcohol was gone. “Sure,” I said. “Why not?”


어느 날 밤, 너무 비참한 기분이 들어 할머니의 신을 향해 절규했다. 

‘제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들이 저를 자랑스러워하면 좋겠어요.’

하지만 약의 유혹이 더 강했다. 확실히 나보다 더 강했다. 어쩌면 하나님보다 더 강할지 모른다. 익명의 중독자 모임에도 나가 보았다. 효과는 없었다. 

오피오이드를 끊기 위해 메타돈(헤로인 중독 치료에 쓰이는 약물-역주) 클리닉에 갔다. 역시 효과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클리닉에 가는 길에 새시라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같은 거리에 있는 재활 치료에 가는 중이었다. 

“당신도 가 보세요. 저도 여기 도움으로 약을 끊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저하고는 안 맞을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멀어졌다.  

어느 날 밤, 정신이 조금 멀쩡했던 나는 텐트촌 대신 노숙자 쉼터의 침대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나와 안면이 있는 한 남자가 내 침대로 건너와 말했다. 그도 나처럼 알코올중독자였다.

“난 신에게 얘기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뭔가가 당신과 함께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소.”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하나님, 이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이것도 메시지인가? 할머니의 편지처럼?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뭔가 독한 음료가 필요했다. 주류 가게에서 한 블록 떨어진 지점, 맥도날드 바로 앞에서 새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 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술 한잔 하려고요.” 내가 말했다.

“일단 제가 아침 사드릴게요. 저하고 얘기하고 나서 술 드시고 싶으면 그것도 제가 사드릴게요.”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나는 소시지, 달걀, 치즈 비스킷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녀의 목에 걸린 커다란 은색 십자가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또 다른 메시지인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지?

식사를 마치자 새시가 말했다. 

“지금 술 없이 여기까지 버티셨어요. 저랑 익명의 중독자 모임에 가지 않을래요?” 

술 생각이 싹 달아났다. 

“물론이죠. 한 번 가 보죠.” 내가 말했다.


People told their stories, and for the first time, I really listened. They talked about hitting bottom. About feeling hopeless. About accepting that they needed help. At last I understood what Nana had been trying to tell me. I wasn’t alone. God wanted to help me, and he’d sent people to help me, good people who had been where I was. I just needed to let them—and him—into my life.

With Sassy’s encouragement, I went through five days of detox and 30 days of rehab. I read the Bible every day and surrendered my life to the Lord. I came out a different man. Still weak—but a man weak in the Lord.

The first place I went was to see Nana, to finally thank her for that note she’d sent, the note that saved my life. She and Papaw asked me to move in with them. I reconnected with my son. I went to AA. And I started going to church. A few weeks later, I snagged this job at the cemetery.

Now I planted the last flag to mark where Mandy would be buried. “I’m sorry,” I said. “You deserved better.”

The next day, after the service, we lowered Mandy’s casket into the grave, placed the lid on it and sealed it. I covered it with dirt and tamped it down. Then I caught sight of a discarded bouquet of red roses on the ground.

“Mandy needs some flowers, God,” I said, arranging the roses on top of her grave.

My life had led me to this very spot, not out of hopelessness but for the chance to start anew. I couldn’t help Mandy, but maybe I could touch the lives of other addicts and share the love that had been given to me. I vowed then and there to stay clean. And I have. Three years later, I have so much to be grateful for. My sobriety. My new job, delivering medical equipment. My growing relationship with my son and with God. No, it shouldn’t have been me in that grave. It shouldn’t be any addict, with the love of God.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그들 삶이) 바닥을 친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희망이 없는 기분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마침내 할머니가 나에게 알려 주시려던 것을 이해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원하고, 나를 도와줄 사람들을 보내 주신 것이다. 내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겪은 좋은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그리고 하나님을-내 삶에 받아들여야 했다. 

새시의 응원 덕분에 5일간의 해독 치료와 30일간의 중독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내 삶을 주님께 바쳤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나약하지만, 주님 안에서 나약할 뿐이다. 

처음으로 간 곳은 할머니 댁이었다. 할머니가 보낸 편지, 내 목숨을 살린 그 편지를 보내 준 것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아들과도 다시 연락을 시작했다. 익명의 중독자 모임에 가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공동묘지의 이 일을 얻었다. 

맨디가 묻힐 자리에 마지막 깃발을 꽂았다. 

“미안해. 넌 이렇게 가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내가 말했다. 다음 날, 장례식이 끝나자 하관한 뒤 뚜껑을 덮고 밀봉했다. 나는 흙으로 관을 덮고 그 위를 발로 밟아 다졌다. 그때 버려진 빨간 장미 다발이 눈에 띄었다.

“맨디는 꽃이 필요해요, 하나님.” 

나는 그녀의 무덤 위에 장미를 놓으며 말했다. 

내 삶은 바로 이 장소로 나를 ‘이끌었다’. 절망 때문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맨디를 돕지 못했지만 다른 중독자들의 삶과 접촉하며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자리에서 술과 약을 완전히 끊겠노라 맹세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3년이 지난 지금 감사할 게 너무 많다. 여전히 단약, 금주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장비 배달 일도 새로 하고 있다. 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 그 무덤에 들어갈 사람이 나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어떤 중독자도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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