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우주에 길을 내며
Guideposts 2025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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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길을 내며
‘우주만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를 표현할 때 우리는 흔히 ‘우주’에 빗대곤 한다. 우주는 만물을 포함하는 ‘무한한’ 시공간의 총체인 까닭이다. 이토록 무변광대한 우주를 알아 가는 것은 그래서 더욱 가슴 뛰는 일이다. 수십 년 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한 소년의 가슴 또한 우주로 인해 쿵쾅거렸다. 훗날 그 소년은 우주에 띄운 인공위성의 궤도, 즉 위성이 가는 길을 계산하고 안내하는 등 ‘위성의 길잡이’ 임무를 감당한다. 2022년 국내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를 띄운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책임연구원 김방엽 박사의 이야기다. 신비에 둘러싸인 우주 속에서 ‘무한’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발견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 몸담으신 지 올해로 30년 차를 맞으셨어요. 연구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현재 맡고 계신 일을 말씀해 주세요.
1989년 설립된 항우연은 올해로 창립 34주년을 맞았어요. 사람으로 치면 한 세대가 지나고 있는 셈이죠. 항우연은 크게 세 가지 분야(항공기술·로켓·인공위성)에서 선도적 연구 개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인공위성 개발과 위성 지상국 분야에서는 지상관측용 저궤도 광학위성, 기상관측용 정지궤도위성, 달 궤도선 다누리호 개발 등을 하고 있어요. 이런 모든 위성들의 관측 자료를 수신하여 처리하고, 국내외 사용자에게 배포하고 활용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저는 위성 지상국 개발과 운영 중에서 인공위성의 ‘궤도’를 설계하고, 위성이 올바른 길로 비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필요 시 궤도 조정을 하는 등 위성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분야에서 일해 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수학을 기반으로 해요. 학교 다닐 때 가장 싫어한 과목이었는데, 지금은 수학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네요. 다행히 요즘은 컴퓨터를 활용한 좋은 수학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 있어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웃음)
2015년부터 3년간 ‘다누리’의 항행 운영 및 지상국 개발 팀장을 맡으셨는데요. 당시 팀장으로서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달 탐사선 다누리 프로젝트는 2014년 가을부터 공식 과제로 시작되었어요. 저는 과제 진행 초기에 다누리호가 수행할 임무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임무 탑재체들을 개발할 기관들을 정하는 일을 했죠. 발사된 다누리가 달 궤도에 도착하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우주선을 통제하는 지상국의 전체 시스템을 구상하고 개발 계획을 세우는 일을 했고요. 2018년 에티오피아에서 1년의 연구 연가를 보낸 후에도 다누리호 프로젝트로 복귀해 임무를 수행했어요. 항우연의 다누리 관제실과 여주에 있는 심우주 안테나, 미국 NASA의 심우주 안테나 네트워크, 국내외 자료 수신 기관 등을 모두 연결하는 지상망 구축 작업에 참여했죠. 지상망 구축이 완료되고 2022년 8월에 다누리호가 발사되어 달 궤도에 안착하기까지 약 6개월간의 초기 운영 기간 동안에는 미국의 DSN(Deep Space Network) 안테나 통신망의 담당자들과 연락하면서 우주선과의 통신을 유지하는 중간 연락자 역할을 담당했어요. 다누리호는 2022년 12월 말에 궤도에 안착한 뒤로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달 표면 사진 촬영과 과학 자료 수집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https://www.kari.re.kr/kpds/, https://www.shadowcam.asu.edu/)에 들어가시면 다누리호가 보내오는 달 표면 사진과 관측 자료를 볼 수 있어요.
다누리호가 찍어 보낸 달 표면 사진이 정말 매혹적이더라고요. 박사님도 이러한 우주의 매력 때문에 이 길에 들어섰을 것 같아요. 우주에 대한 박사님의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좋아하던 장난감 하나가 떠올라요. 필름에 그려진 네거티브 그림(배경이 주제보다 어두운 그림)을 햇빛을 이용해 인화지에 새기는 장난감이었죠. 또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루 동안 태양의 동선을 그려 보는 실습을 한 기억도 떠올라요. 해의 움직임을 투명 아크릴 바가지에 그리는 활동이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사인펜으로 바가지에 태양 위치를 그려 넣었어요. 그때부터 우주 공간 천체들의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우주에 사로잡힌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코스모스〉라는 TV 다큐멘터리와 그 내용을 담은 칼 세이건의 책을 보았어요. 저 말고도 『코스모스』는 여러 사람의 인생 항로에 영향을 준 책이죠. 동네 서점에서 제 생애 처음으로 값을 에누리하여 그 책을 구입했죠. 내 손에 들린 책 속의 사진이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직접 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어요. 그 우주선들을 보내고 조종하는 곳이 미국 NASA라는 기관의 JPL(제트추진연구실)임을 알고 나서 ‘언젠가는 나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죠. 그 후로 천문학 분야의 공부를 이어 가던 중 항우연에 입사하였고, 2022년 8월에 다누리호가 발사되어 달 궤도에 진입하는 순간 통제실에 앉아 관제팀의 지상망 담당자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된 거죠.(웃음)
말씀을 들어 보니 박사님은 ‘떡잎부터 다른 아이’였네요. 꿈에 그리던 일을 업으로 삼게 된 박사님의 저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흔히 말하는 ‘범생’으로 살았어요. 집과 학교만 오가는 생활이었고, 다른 잡기(?)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뛰어들 만한 용기도 없었죠. 그러다 대학에 가서는 조금 달라졌어요. 학과 공부보다는 아마추어 무선을 하는 동아리 활동으로 대학 시절을 거의 보냈거든요. 개인국 운영은 물론이고 1년에 3, 4회 있는 야외 운영에도 꼭 참여했고요. 3학년이던 1988년에는 동아리 회장까지 했죠. 학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동아리방으로 등교했고, 수업 마치면 다시 동아리방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학교 성적은 거의 바닥권이었는데도(웃음) 동아리 활동 덕분에 인공위성통신용 무선국 설치를 추진하던 대학원 연구실에 스카우트되다시피 해서 진학할 수 있었고, 대학에서 경험한 아마추어 무선 지식과 경험 덕분에 훗날 에티오피아의 ASTU(Adama Science & Technology University, 아다마 과학기술대학교)에서 연구 연가 기간 동안 인공위성 통신용 무선국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는 에티오피아에서 아마추어용으로는 처음으로 만든 거였어요.
청년 시절 좋아서 한 일이 훗날 귀하게 쓰임 받게 된 거군요.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1년 동안 경험하고 느낀 일들을 나눠 주시겠어요?
보통 연구 연가는 말 그대로 연구자들의 재충전을 위해 가족과 함께 우주 기술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의 고급 기술을 배우며 새로운 연구 주제를 탐색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저는 좀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항우연 원장과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지내신 백홍렬 박사님께서 센터장으로 계시던 STI(Space Technology Institute)에서 큐브샛과 통신을 할 수 있는 아마추어 지상국을 설치하고 운영 기술을 전수해 주는 일을 자원 했습니다. 현지에서 지내는 동안 어려웠던 점은 역시 불안정한 전기 공급 문제와 지상국 구축에 필요한 부속, 적절한 공구들을 제때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1년 내내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서 하루 중에도 수차례 정전이 발생하고 전압도 불안정해서 모든 PC에는 개별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가 필수였죠. 정년퇴직 후의 자원봉사 또는 코이카(KOICA) 등을 통해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10여 분의 한인 교수님들과 청년들의 도움 덕분에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제 일정을 마치고 2019년 여름에 귀국할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지금도 여전히 현지 교회와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애쓰는 여러 교수님들과 가족분들, 청년 봉사단원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크리스천 과학자’이신 박사님의 신앙 이야기도 무척 궁금합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방식 또한 ‘과학적’으로 접근하셨다고요.
결신 기도를 한 것은 군 생활 중 말년 병장 때 참석한 ‘제자훈련’에서였어요. 당시 군단본부 교회에서 예하부대(여단/대대/중대)별로 한두 명씩 필히 참석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는데요. 각 부대에서는 주로 할 일이 없는 말년 병장들을 의무적으로 보냈죠. 1991년 여름, 군단본부에서 있었던 3박 4일의 기간 동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은혜’를 받고 살아왔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깨달아졌어요. 강사 목사님의 열정적인 지도 속에서 마지막 날 결단을 했습니다. 군인교회답게 거의 명령에 가까울 정도로 결단을 요구하는 목사님을 따라 ‘한번 믿어 보자, 하나님이 진짜로 계신다라고 믿고 시작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임했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성경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갑자기 이해되더라고요. 그동안 인생에 관해 가졌던 의문들이 한순간에 이해가 됐어요. 그날 저녁까지도 결단하지 못한 참석자들은 자정 무렵까지 목사님으로부터 ‘나머지 교육’을 받아야 했고 끝까지 ‘결신’하지 못한 참석자도 많았어요. 그들을 보는 제 마음이 참 안타깝더라고요. 결단 후 하염없이 ‘자유함’을 느끼며 울컥했던 기억이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항우연 안에서는 신우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신앙 나눔을 하고 계신데요. 모임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대덕연구단지에는 정부 출연 연구소마다 크고 작은 신우회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수십 명의 회원이 정기 모임과 예배를 통해 많은 활동을 이어 가는 곳도 있고, 아쉽지만 명맥만 유지하는 신우회도 있어요. 저희 항우연 신우회의 경우는 연구소 창립과 함께 모임이 만들어진 이래로 2020년까지 월 1회 정기 예배를 드렸고 여러 가지 행사도 했어요. 그러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활동이 조금 축소된 지금은 월례 예배를 쉬는 대신 주 1회 매주 수요일에 소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다과 모임, 둘째 주에는 찬양 모임, 셋째 주에는 기도회 그리고 제가 섬기는 넷째 주에는 독서 모임을 진행합니다. 매월 한 권의 기독교 서적이나 고전문학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시간이죠. 책도 읽고 믿음도 나눕니다. 참여하는 인원이 느리지만 조금씩 늘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우주’라는 공간은 아득히 멀고 광대한 영역으로 인식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주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을까요?
얼마 전에 우주로 올라간 ‘제임스 웹’이라는 최신형 우주망원경이 있어요. 그 이전에 운영했던 허블 우주망원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시직경으로 0.1도가 되지 않는 아주 좁은 구역 안에서 지금까지 발견한 외부 은하나 성단의 숫자만큼의 천체가 새로 발견됐다는 사실에 천문학자들이 당황해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우리가 보거나 느낄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아주 작고, 아무리 넓은 곳을 바라본다 해도 그 너머에는 지금까지 알아 온 만큼의 미지의 세계가 또 있다는 거죠. 자연과학 분야가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 인체만 해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고, 태평양 심해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생물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하죠.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맹장 수술을 했는데요. 지금도 맹장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가 전공한 천체역학 분야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하나님을 믿는 일’의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우주가 어느 날 갑자기 빵(Bang) 하고 나왔다”고 주장하는 ‘빅뱅’(Big Bang) 우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우주의 천체 관측 데이터가 모두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 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어요. 그 논문의 이론에 의하면 빅뱅 직후 1나노 초(십억분의 1초)의 순간에 1입방센티의 질량이 1023그램 정도는 되어야 현재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만약, 그때의 초기 질량 값을 1그램만 줄이거나 늘리면 컴퓨터 계산상으로는 현재의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앞서 언급한 논문의 계산 결과가 맞다 해도 ‘1023분의 1’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희박한 확률로 지금의 우주와 모든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과학기술의 이론을 믿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도 저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컨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미래에 인간이 화성에 정착하는 시대가 온다 해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의 세계, 하나님의 세상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겸손하게 인간 지식의 한계 또한 인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천문학 전공자임에도 제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거대한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신앙적인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대체로 모든 자연과학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움직여 가는지 원리를 알게 되면, 이 세상을 더욱 잘 관리하고 인간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죠.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만드신 바로 그 목적대로, 처음 만들어질 때의 원리대로 작동할 수만 있다면, 세상 만물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각 피조물 중에서 일부가, 특히 사람이 원래의 피조 목적에서 벗어나 본연의 할 일을 망각한 것에서 모든 세상 문제가 시작된 것이죠. 자연물이든 인간 세상이든 누구든 언제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행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잘 돌아가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무궁무진하신 분입니다.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 항공우주공학뿐만 아니라 인체를 연구하는 의학, 지구의 역사를 추적하는 지질학, 고고학, 고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그것이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실 뿐이고, 그분의 위엄과 권능을 침범하거나 방해하는 수준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우주를 연구하면서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많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로서 어떤 점에 자부심을 느끼시나요?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기쁨, 희열… 그런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사실 우리는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주를 직접 보거나 느낄 수는 없거든요. 태양의 움직임과 달, 별 그리고 인공위성이 보내오는 영상들을 보며 간접적으로 보고 느끼는 거죠. 제 경우에는 인공위성의 궤도 운동을 예측하고 추적하는 일이 많다 보니 제가 예상한 대로 위성이 지나가며 교신하는 순간에 그런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아, 역시 우주는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구나’ 하며 짜릿해하죠.
박사님은 어떤 과학자로 남고 싶으신가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을 말씀해 주세요.
올해로 항우연 입사 30년 차이니 6, 7년 뒤에는 은퇴를 하게 될 텐데요. 연구자로서 더 많은 경력을 쌓고 더 장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인공위성 분야에서 습득한 경험과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기술 지도나 저술, 강연 등의 활동을 해 보고 싶어요. 특히 제가 청소년 시절에 우주를 향해 꿈을 품었듯 미래 우주기술 분야에 뜻이 있는 후배들과 학생들을 위해 ‘과학커뮤니케이터’ 같은 일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논문을 써 왔지만 앞으로는 일반인, 학생 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수준의 과학 도서나 우주 관련 에세이, 과학 소설 같은 분야에도 도전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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