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의 등 뒤에서
Guideposts 2025 |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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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등 뒤에서
우리는 기억한다. 어느 날 돌연히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며 복음을 밝히 보게 된 바울을. 사울에서 바울로, 삽시간에 생의 행보가 뒤집혀 버린 한 인물을. 14세, 사춘기 시절 복음을 만나 고국 캄보디아를 떠나온 써 스레이넷(한국 이름 김수나)도 그러했다. 이제껏 들리지 않던 복음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기 시작한 것. 무엇보다 그것이 믿어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빼어날 수(秀)’ ‘아름다울 나(娜)’, 한국에서 부여받은 새 이름처럼 그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순종의 여정을 엮어 간다. 타인에게 도움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소망으로 채워 온 15년의 한국 생활 역시, 그 이름처럼 빼어나게 아름답다. 고국과 이웃을 향한 섬김의 마음이 그의 걸음마다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무척 유창하게 구사하셔서 놀랐어요. 지난 15년 동안 쏟으셨을 치열한 노력과 애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한국말을 아예 못했어요. 그래서 주로 영어로 소통을 했죠. 원래 나이로는 8학년,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 이곳에 왔는데 1년 낮춰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했어요. 국어, 역사, 사회 등은 선생님이 옆에 앉아서 통역으로 도와주셨고, 영어, 수학, 체육 같은 과목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도 크게 문제가 안 돼 혼자서 공부했죠. 전교생이 모두 한국인이고, 저 혼자 외국인이었거든요. 제가 캄보디아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웃음) 처음 성적을 받고 정말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내가 이렇게 공부를 못했나 싶을 정도로 충격이 커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아, 진짜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겠다 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힘들 때마다 “하나님,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 이런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든 좀 도와주세요” 기도하면서요.
힘겨운 과정을 지나 어느덧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되었는데요.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처음 한국에 온 순간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할 것 같습니다.
정말 신기했죠. 왜냐하면 캄보디아 아이들한테는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는 일이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어요. 솔직히 한국이 어디인지조차 몰랐고요. 아리랑 TV로 한국을 접한 게 전부였죠. 한국에 처음 왔을 때가 겨울이었어요. 2월 한파가 심해서 무척 추웠죠. 덥고 습한 캄보디아를 떠나 한국에 오니 훨씬 더 춥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또 가는 곳마다 건물들이 잔뜩 서 있어서 놀라웠어요. 그 건물들 중에 십자가가 여기저기 보이는 것도 신기하더라고요. 조금만 가면 교회가 있고, 조금만 가면 또 교회가 있고… 그게 참 놀라웠어요. 캄보디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니까요.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해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나요?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님이 세우신 라이프기독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캄보디아 학생들한테 한국에 가서 공부할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지원을 했죠. 당시 시험에 응시해 3, 4등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사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나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무작정 기도했어요. “하나님, 한국에 정말 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하고요.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기도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응답해 주셨어요.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던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인가요?
해외에 나가 공부한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잖아요. 공부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또 열심히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그 당시에 저는 교사나 의사 등을 막연히 꿈꿨어요.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어떤 원대한 꿈을 가져도 환경적으로 많이 열악하거든요. 또 장사하시는 엄마와 남동생, 여동생을 생각하면 장녀로서 책임감이 컸어요. 그래서 엄마의 일을 물려받아 장사를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공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가정에 대한 책임감, 의무감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해외에 나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미래를 향해 한 발 나아가 내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한 3년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떠나왔어요.
그렇게 3년을 계획하고 왔는데, 무려 15년이나 흘렀어요. 15년이라는 세월을 지속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요?
선생님께서 열심히 공부하는 저를 보고 “더 공부하고 싶니?”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기회만 있으면 더 공부하고 싶다고 대답했죠. 제가 한국 유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준 곳이 수원중앙침례교회예요. 원로 목사이신 김장환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신 과정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마음에 도전이 되었어요. 그래서 선포 아닌 선포를 했죠. 나도 목사님 같은 삶을 살아 보겠다고요.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래서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에만 매달렸죠. 선생님들이 친구들이랑 좀 놀기도 하라고 말씀하실 정도로요.(웃음) 스스로 압박감을 느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과 일대일로 교제하고 기도하면서 그 시간들을 보냈기에 견딜 수 있었어요.
캄보디아에서 다닌 라이프기독학교와 한국에 와서 입학한 중앙기독학교의 교육 환경은 어땠나요?
라이프기독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채플을 드렸어요.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예배였죠. 복음에 대해서 잘 몰랐던 초반에는 ‘이게 뭐지?’ 하는 의문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호기심 반으로 직접 기도를 해 봤어요. 누구한테 올리는 기도인지도 잘 모른 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기도했죠.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찾게 해 주세요” 이런 식의 기도였어요. 정말 이루어질까 하는 의심을 품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어요. 서너 번 그렇게 반복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경험을 하면서 진짜 누군가 계시는 거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어요.
한국에 와서 입학한 중앙기독학교는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정말 좋았어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예쁜 교정에서 예쁜 교복을 입고 실컷 공부하며 놀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무엇보다 수업에 활용하는 학습지나 교육 방법이 정말 놀라웠죠. 그래서 학습지를 받을 때마다 따로 모아 뒀어요. 훗날 제가 캄보디아에 가서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료들을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싶어서요.
하나님을 모르는 어머니가 자매님을 라이프기독학교에 보내고, 또 한국으로의 유학도 허락하신 점이 놀라워요.
원래는 학비가 무료인 국립 중학교에 입학해야 했지만, 그곳은 교육 환경이 열악한 데다 학교 폭력 등의 문제가 있어서 엄마가 많이 걱정하셨어요. 그러던 중에 라이프기독학교가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어려운 형편이지만 학비를 마련해 그 학교에 보내 주셨죠. 한국 유학을 보내실 때도 한편으로 걱정하면서도, 기독교 학교가 딸을 돌봐주고 유학까지 보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며 흔쾌히 보내 주셨어요. 엄마가 아직 하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마음은 많이 열려 있어요. 그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경험하셨으니까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 전화기로 국제 전화를 걸어 소통해야 해서 하나님에 관한 대화를 깊이 나눌 수가 없었는데요. 대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엄마께 하나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또 중간중간 캄보디아에 갈 때마다 복음을 전했어요. 제가 느끼는 하나님에 대해, 제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했죠. 교회에서 받은 신앙 훈련을 엄마께 적용도 하면서 서서히 엄마가 복음을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캄보디아 문화에서는 복음을 전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믿고 섬기는 신들이 아주 많거든요. 예수님, 하나님을 신으로 알고 믿기는 하지만, 동시에 다른 신도 받아들이고 믿어요. 그렇다 보니 하나님,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복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요.
처음에는 호기심에 가까운 마음으로 신앙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느낀 순간들을 나누어 주세요.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 유학생 선발 시험을 치렀을 때 저는 3등 또는 4등을 했어요. 지원자 중 2명을 선발한다고 해서, 제 앞의 두 학생이 인터뷰를 한 걸로 알고 있었죠.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저한테도 인터뷰 기회가 주어졌어요. 대기자로서 인터뷰하는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 간절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당시에는 엄마가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으셨기 때문에 신앙생활 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밤에 몰래 기도를 했어요. 그 기도에 기적적으로 응답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죠. 그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그분의 살아 계심을 느꼈어요. 그 후 한국에 와서 낯선 환경, 문화, 날씨, 음식, 공부까지 모든 것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저를 붙들어 주셨어요. 당시 제가 한국말을 잘 몰라도 하나님께 편지를 많이 썼는데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편지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어요. “계속해서 이런 간절한 마음 붙잡고 가게 해 주세요. 힘을 주세요. 위로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한 순간들이 저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어요. 저에게 캄보디아를 향한 마음을 부어 주시고, 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사명과 꿈을 주셔서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 자체가 저에게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확증 같아요.
지난 시간 가운데 마음에 사무치는 좋은 기억, 또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요?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홈스테이할 때 저를 딸처럼 보살펴 주신 한국 부모님이 저에겐 가장 고마운 분들이에요. 특히 한국 부모님이 제 생일 파티를 해 주셨을 때가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캄보디아에서는 형편이 어려워서 생일을 일일이 챙기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서로의 기념일을 챙기며 축복하는 순간들이 참 행복했어요. 그리고 한국 아빠가 밤에 잠들기 전 축복 기도를 해 주신 것도 따뜻하고 울컥한 기억이에요. 가정 예배를 드리며 서로 손 잡고 기도하던 순간들도요. 한국 아빠는 영적인 부분을, 한국 엄마는 언어와 생활 등을 가르쳐 주고 도와주셨어요.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이 어떤 문화에서 성장하는지를 경험하면서, 훗날 내 아이 또는 다른 캄보디아 아이들을 크리스천 가정 안에서 품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이제까지 받아 보지 못한 사랑과 축복을 듬뿍 받아서 정말 행복했거든요.
학교생활도 참 재미있었어요.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대학 때 동아리 활동이 특히 좋았죠. 학생 스스로가 자유롭게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고, 같이 모여 활동할 수도 있다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임원으로 활동했는데요. 그곳에서 여러 선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도 받으며 신앙적으로나 학업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타국에서 마음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더라고요.
우리는 오늘날 다문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한국 내에 있는 외국인들이 겪는 고충은 무엇이며,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뉴스를 통해 캄보디아 또는 외국인 문제와 관련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기도하게 돼요. 최근에 캄보디아 외국인 근로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정말 안타까워요.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힘든 순간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공동체에 나와서 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거든요. 또 선교사님이나 목사님께 상담을 받고 문제를 의논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하나님을 모른 채 소망 없이 일만 하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돼요. 그런 이들 곁에 귀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정말 큰 힘이 돼요. 그래서 저는 그런 도움 요청이 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응하려고 해요. 사실 저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비행기만 봐도 캄보디아가 그리웠거든요. 정말 외롭고 늘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제 등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어요. 다른 외국인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을 버팀목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으로 학업을 이어 가고 계시잖아요. 학업 가운데 절실히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캄보디아에서는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생소해요. 물론 비영리 단체들도 있고, NGO 단체도 많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기관은 물론 체계적인 복지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아요. 캄보디아에도 국가가 운영하는 복지 시설들이 생겨서 국민들이 그 시스템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어요.
현재 한국의 복지기관들이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분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한 비자와 상담 등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자 문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거든요. 본인의 전공은 A였는데 졸업 후 비자 문제로 B 분야에 취직하게 되는 일도 있어요. 또 언어적으로도 어려움을 많이 겪기 때문에 상담을 받기에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 통역 서비스가 더 많이 지원되면 좋겠어요.
자매님의 모든 답변 속에 고국을 향한 사랑과 간절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그 마음을 품고 캄보디아 선교팀에 합류해 다녀오신 적도 여러 번 있다고요.
최근에 제가 의료 선교팀이랑 캄보디아에 가서 통역으로 섬겼는데요. 그곳에서 만난 한 아이가 저에게 “선생님은 왜 캄보디아 말을 어색하게 해요?” 하고 묻더라고요.(웃음) 고국의 아이들을 만나 함께 놀면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앞으로 이들을 잘 섬기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요. 실제 삶에서 겪는 그런 어려움을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도와주고 싶거든요. 어려운 순간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한국의 복지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캄보디아에 적용하고 실천해 보고 싶어요.
자매님의 이후 계획과 더불어 기도 제목을 나눠 주시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현재 박사 논문을 쓰고 있어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 힘겨운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힘주시기를 소망해요. 나중에 캄보디아 또는 다른 곳,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제가 그동안 받은 은혜를 전하고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라요. 둘째는 캄보디아 복음을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해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당장은 “네, 믿을게요”라고 답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믿는 사람은 드물어요. 실질적인 복음과 진리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잘 전할 수 있고, 또 그들이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를 기도해 주세요. 또 한국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친구들이 고국에 돌아갔을 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잘 지켜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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