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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입니다


Guideposts 2026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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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6 | 03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입니다


인생에서 돌연히 찾아오는 뜻밖의 일은 우리를 시험대에 세운다. 예고 없이 찾아와 삶을 뒤흔드는 그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 관점과 태도가 우리의 오늘을 바꾸고 내일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4기 유방암 진단을 받아 ‘시한부’의 운명을 마주한 이혜은 집사는 절망 대신 소망을, 원망 대신 감사를 붙들었다. 인생의 연한을 결정짓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유한한 생을 긍정함으로써 무한한 하늘을 소망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진정한 자유다.







열일곱 시간의 시차를 가르고 화상 인터뷰로 만나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화면에 비치는 집사님의 얼굴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데요.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이혜은 집사입니다. 원래는 최혜은인데, 이 씨 남자를 만나서 이혜은이 됐어요.(웃음) 현재 간호사로 일하고 있고, 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해요. 그리고 남가주사랑의교회 1부 예배 찬양대인 글로리아 찬양대를 섬기고 있어요. 2008년 무렵부터 시작했으니까 18년 정도 찬양대에 섰네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최근에는 예전만큼 많은 것은 못하고 찬양대만 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OCKMC(Orange County Korean Master Chorale)란 합창단에서 회계를 맡고 있는데요. 힘들고 지친 이민자들과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찬양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투병의 시간이 어느덧 5년에 접어들었어요.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지요?


지난주 목요일에 항암을 한 뒤로 좀 많이 아팠는데, 수액을 맞고 반짝 회복해서 힘이 났어요. 일반적으로는 저를 ‘4기 암 환자’라고 분류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어떤 면에선 일반인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항암을 받으면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간호사 일도 다시 시작했고요.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죠. 골프를 시작해서 종종 필드에 나가고요. 또 얼마 전에는 합창단에서 연주회도 마쳤어요.

이 모든 것을 해 나가면서 저는 제가 살아 있다고 느껴요. 그런 저를 보고 은혜받는 분들도 있죠. 저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기도 중에 응답받은 내용을 나눠 주실 때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는구나’ 하고 깨닫게 돼요.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나의 아픔을 사용하신다면 내 암덩이도 복덩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에는 그저 건강하게 하루하루 살려고 노력해요. 제가 찬양대와 합창단에 서는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인데요. 찬양이란 ‘곡이 있는 기도’라고 생각해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시편 150:6)”하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제 호흡이 있을 때까지는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고 싶어요.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순간, 쉬 감당하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나눠 주세요.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웃음) 일기장을 펼쳐 봤어요. 처음에 가슴에서 몽우리가 잡힌 때가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였어요. 그래서 혹시 그 부작용이 아닐까 했죠. 곧장 병원에 진료 신청을 했지만, 바로 진료를 받지는 못했어요. 미국은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종양이 더 자랐고, 좀 늦게 수술을 하게 됐죠.

진료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심장이 덜컹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사실 연락을 받기 전에 어떤 예감이 있기는 했어요. 초음파 검사를 할 때 테크니션의 반응이 평소랑 좀 달랐거든요. 그래서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설마설마하던 결과를 직접 들으니 가족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남편에게 연락하고 나서 기도를 했죠. 그때 써 놓은 일기를 보니 남편과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아이들과 같이 울고 그랬더라고요.



당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어땠나요?


이 상황을 허락하신 그분의 뜻을 발견하려고 했어요. 그때 “혜은아, 천천히 가자. 내가 너랑 함께하고 싶고 너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너는 왜 이렇게 바빴니? 잠깐 쉬며 나랑 시간을 보내자.”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잠깐 이런 시간을 허락하신 거고, 반드시 고쳐 주실 거라 확실히 믿었죠.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내 발의 등불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친히 인도하실 거라는 확신이 강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할 수 있었죠.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참 평안했어요.

저희 교회에 암 전문의이신 장로님이 계신데요. 그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크리스틴(이혜은 집사의 영어 이름), 우리는 다 죽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어.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해.”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번뜩 정신이 들었어요. ‘아, 죽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에 집중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했죠. 그 마음으로 모든 수술과 험난한 치료를 받고 나서 리미션(remission, 암이 활동하지 않는 상태)에 접어드니 더욱 감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또 바쁘게 살아가게 되었죠.

누구나 언젠가는 맞게 될 ‘죽음’이니까 ‘우리 모두는 시한부’라는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신 점이 무척 인상 깊어요. 그 인식의 전환 이후 집사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암을 겪은 후로 ‘시한부’라는 말을 저만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어요. 인간은 모두 유한한 존재잖아요. 다만 병으로 인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정해진 것처럼 보일 뿐, 사실 그 시간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어요. 하루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혹은 놀랍게도 30년 뒤든, 그저 저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한부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하루의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었어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이전이라면 중요하게 여겼을 일들이 이제는 그리 크게 여겨지지 않더라고요. 훗날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되면, 우리가 지지고 볶고 했던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제 일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암에 걸리기 전에는 경제 활동의 방편으로 간호사 일을 했다면, 현재는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만나 저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서로 용기를 주고받으며 일하고 있어요. 항암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며 ‘괜찮다, 할 수 있다, 해 보자’ 하고 격려하면 긴 시간의 치료도 웃으며 견뎌 내죠. 하나님이 작은 저를 통해서 일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이제 시한부라는 말은 저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단어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투병 중인 지금도 간호사로 일하신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간호사가 되기 오래전부터 돌봄과 회복에 대한 소명을 품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그 직업을 택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돌봄의 환경에 익숙했어요. 저희 외가에 의사와 목회자가 많거든요. 외할머니도 한국에서 수간호사로 일하셨고요. 목사이신 아버지는 오빠에게 ‘영을 치료하는 목사’가 되라고 하셨고, 저에게는 ‘육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미국에 와 보니 의사가 되는 길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예방의학을 공부했어요.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전공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채 지내다가 커뮤니티에서 돕는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람을 돕고 환대하는 일을 좋아하는 성향이 발현된 거죠. 그 후 단단히 마음을 먹고 도전해서 간호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어요. 

가장 오래 일한 곳은 저소득층을 돌보는 공공 의료 현장이었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삶의 밑바닥과 마주하며 일했죠. 거칠고 냄새나는 환자들을 대하는 고된 순간마다 ‘만일 예수님이 이런 모습으로 오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바쁘게 일하느라 그 생각을 잊은 채 힘들어하고, 그러다 또다시 ‘오늘 예수님이 나에게 섭섭하셨겠다’ 하며 돌이켜 반성했죠.



간호사로 일한 경험이 투병의 시간에 도움이 되었나요?


환자들이 저의 경험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지만, 제가 환자들로부터 받는 위로와 소망이 훨씬 커요. 암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난 뒤 제가 항암 치료를 받은 병원에 지원해서 일하게 되었는데요. 다시 일을 시작한 뒤로 암이 재발되어서 이제는 환자들에게 항암을 주면서, 동시에 항암을 받는 입장이 되었죠. 생각나는 환자 중에 40년 가까이 암 투병 중인 분이 계세요. 미국에서는 신앙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나눌 수 없는 환경이지만, 눈빛과 짧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며 격려를 주고받곤 했죠. “너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시는 그분한테서 큰 감화를 받았어요. 그분처럼 나도 이렇게 내 삶을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겠구나 하는 희망도 갖게 되었고요.



간호사 대 환자의 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함께하는 관계가 되었군요.


맞습니다. 서로 아픔을 겪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공감이 깊어지고, 그 안에서 신앙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나눌 수 있었죠. 몸 상태가 비교적 괜찮을 때는 환자의 집에 가서 정맥 주사를 투여하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요. 한 번 방문하면 일곱 시간을 함께 보내요. 한번은 백인 할아버지 댁에서 투여하는 동안 긴 대화를 나누었어요. 젊은 시절 예수님을 잘 믿다가 방황 후 병을 얻고 다시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었어요. 그분과 함께 성경을 읽고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귀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이 만남을 예비하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분은 저를 떠나보낼 때면 꼭 저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가 간호사인데도요.(웃음) 하나님이 제 투병의 시간을 이렇게 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돼요.

그동안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셨는데요. 언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셨나요? 지난 이민 생활에 대한 소회도 말씀해 주세요.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미국 시카고의 한 교회에 초청을 받아 약 2년간 가족이 함께 미국에 머물게 되었어요. 그 후 한국으로 돌아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이 다시 “미국에 갈래?” 하고 물으셔서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답했어요. 다만 행정적인 절차가 길어져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에야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하게 됐어요. 다시 언어를 배우고, 삶의 기반을 새로 잡아야 하는 본격적인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죠. 다행히 제가 정착한 캘리포니아는 한국 사람들이 많고, 한국 교회와 커뮤니티가 잘되어 있어서 이민자로서 체감할 만한 차별은 거의 겪지 않았어요. 지역 자체가 다양성이 크다 보니 동양인이라고 배제되거나 불편을 느낄 일도 없었고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절을 안정적이고 무난하게 지나올 수 있었죠.



목회자 자녀로 성장하던 어린 시절, 집사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였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아빠 같은 존재였어요. 다정한 아버지 품에서 자라서인지 하나님께도 마음껏 떼를 쓰며 감정을 표현했죠. “우리 아빠도 해 주는데, 하나님은 왜 안 해 줘요?” 따지면서요.(웃음) 한번은 유과가 너무 먹고 싶어서 엄마한테 말했더니 “하나님께 기도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그날 저녁에 어떤 권사님이 지방에서 유과를 보내 주신 거예요. 그런 일이 항상 있었어요. 아주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매번 응답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됐죠. 저에게 주시지 않은 것들은 모두 저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거두어 가신 것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됐고요. 암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저에게 여전히 선하신 분이에요. 그 시간 속에서 최선의 것들을 주시니까요. 사람들 눈에는 고통의 시간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 시간을 통해 남편과 아이들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수많은 성도들의 기도를 온몸으로 받고 있어요. 하나님은 저에게 늘 선하신 분이며, 늘 최선의 것만을 허락하시는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가족이 큰 의지와 힘이 될 것 같아요. 남편과 두 자녀의 사랑스러운 점을 자랑해 주시겠어요?


믿는 자에게는 전생이 없지만(웃음) 만약 전생이 있었다면 아마 저는 나라를 구했을 것 같아요. 다정하고 자상한 100점짜리 남편을 제 곁에 두었으니까요. 제가 주방 일을 손 놓은 지 오래됐는데, 남편은 아무 불평 없이 식사, 설거지, 빨래 등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대학교 4학년인 아들은 아빠를 이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공부를 하고 있고, 대학교 2학년인 딸은 저의 뒤를 따라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자녀들이 스스로 묵묵히 길을 내어 가고,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요. 얼마 전에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이렇게 힘든 상황에도 믿음으로 기도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진짜 어른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손잡고 잘 가고 있구나 싶어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딸은 SOW(Seeds of Worship; 미국의 한인 청년이 주축이 된 선교 및 워십댄스 단체)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이번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크리스천 찬양 컨퍼런스’에서 공연도 해요.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가족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에요.



버킷리스트 중에 이미 이룬 것, 또는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제 버킷리스트는 무척 소소해요. ‘내 나이만큼 성경 통독하기’ ‘성지 순례 다녀오기’ ‘하와이 여행’ ‘여권 모든 장에 도장 찍기’ 등등. 이룬 것도 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있는데요. 그중 아들, 딸 결혼식 참석하기가 있더라고요.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거기까지 해 보고 싶어요. 여태까지 해 보지 못한 일을 적는 게 버킷리스트잖아요. 거창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서 하나씩 해 나가면 그게 다 버킷리스트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소망들 반드시 다 이루실 줄 믿습니다. 집사님의 버킷리스트에 갈망하는 성령의 열매를 하나 넣는다면 무엇을 넣고 싶으세요?


어렸을 때는 ‘사랑’의 열매를 갈망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아홉 가지 열매 모두 다 갈망해요. 욕심이 많죠?(웃음) 그중에서 고르라면 ‘오래 참음’ 인내의 열매예요. 한편으로 이미 제 안에 가장 크게 열린 열매는 ‘희락(joy)’ 같아요.



‘희락(joy)’의 열매야말로 집사님의 은사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의미에서 고난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집사님의 장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쁜 일은 빨리빨리 잊고 좋은 일만 기억하려고 해요. 잘 안된 일은 빨리 털어 내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살면서 힘들 때도 있고, 진짜 아플 때도 많거든요. 우울할 때도 있고요. 어떻게 계속 기쁘기만 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 힘듦과 아픔과 우울을 딛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면 금방 또 잊어버리고 다시 기쁨을 회복하게 돼요. 안되는 거 붙잡고 있어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더욱 말씀 붙잡고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게 저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뜻밖의 고난을 지나고 있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제가 항암을 서른여섯 번, 방사선 치료를 스물다섯 번 정도 했거든요. 방사선실과 CT, MRI 검사실에 들어갈 때면 항상 엄청난 공포가 밀려와요. 그때마다 저는 시편 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끊임없이 되뇌며 평안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나를 인도하는 지팡이, 악한 것을 쫓는 막대기를 떠올리며 깊이 묵상해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잖아요. 그 짐을 혼자 감당하려 할 때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잠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시선을 맞춘 채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 보셨으면 해요.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세요. 그 관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걸어갈 힘을 얻게 돼요. 이 터널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나요. 그 끝이 치유든 본향이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빛을 향해 걸어간다면 그 길 자체가 천국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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