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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


Guideposts 2026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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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posts 2026 | 04

끝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


망가진 악기를 들고 공방 문을 여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대개 비슷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게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김학영 장로의 손에 악기가 놓이는 순간, 그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가 된다. 그는 악기를 고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말한다. 버려질 뻔한 조각과 가루까지 모아 다시 쓰는 손길에는, 쓸모없다고 여겨진 것 하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담겨 있다. 30년 넘게 현악기를 수리해 온 그의 공방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다. 이곳은 노동의 자리이자 삶의 자리이고, 조용히 찬양이 흐르는 가운데 손으로 드리는 예배의 자리이기도 하다. 악기가 다시 소리를 찾듯, 사람의 인생 또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 그는 오늘도 그 믿음을 붙들고, 악기를 마주한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만지는 태도, 끝이라고 부르지 않는 하루 속에서 부활은 그렇게 반복된다.







현악기 수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종로에 ‘중앙악기’가 있었는데, 거기 있을 때 우연히 바이올린 하나를 맡게 됐습니다. 그때는 기술도, 도구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 사포 하나 들고 시작했죠. 조금씩 만지다 보니 손에 익어 갔고, 이걸로는 안 되겠다 싶어 청계천 뒤 철공소에 가서 도구를 빌려 쓰다가, 나중엔 칼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 가며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누가 알려 주거나 배운 것도 없이 거의 독학이었어요.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지다 보면 잘못된 부분이 보이고 방법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책으로 배운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손으로 익힌 감각들이 쌓이면서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방향이 마음에 잡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나는 악기들이 많았습니다.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경우에도 그랬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아,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그러다 제 뒷모습을 보며 자란 큰아이가 이탈리아로 가서 악기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됐습니다. 저는 평생 현장에서 부딪치며 익힌 사람이고, 아이는 그곳에서 이론적으로 정리된 기술을 배우다 보니, 예전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받게 되더군요. 반대로, 제가 현장에서 익힌 감각적인 부분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이 일은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한번은 대구에서 외국 기술자가 진행하는 악기 수리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직접 만든 도구를 가져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외국인 강사보다 제 작업을 보러 오더군요. 강사가 설명하는 원리를 들어 보니, 제가 오랫동안 몸으로 익힌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 분명해지더군요. ‘아, 이 길이 그냥 혼자 걸어온 길은 아니구나.’ 



처음 악기를 수리하던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어요. 손님 물건이니까, 과연 좋아하실지, 만족하실지 걱정이 앞섰죠. 그래도 조심스레 수리한 뒤, 손님이 직접 연주해 보고 “와, 이렇게 달라졌네” 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 느꼈던 기쁨이 참 컸어요. 지금은 손을 대면 결과가 어느 정도 보이니까 성취감이 바로 오지만, 초창기에는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비용을 떠나서, 수리한 뒤 연주해 보고 달라진 소리에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지금도 제일 좋습니다. 싼 악기든, 좋은 악기든 다 한 번은 살려 보라고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꼭 연주해 보라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저렴한 악기를 구입해서 아이에게 주고, 소리가 안 나면 아이만 혼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런 악기일수록 더 손을 봐주고 싶어요. 좋은 소리가 나야 아이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요.

악기는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속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교통사고가 난 악기가 있었는데,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여도 소리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건 주인이 잘 모를 수 있지만 저는 보이더군요. 사람으로 치면 의사가 진단하듯, 악기의 상태가 보이는 거죠. 나중에 문제가 될 줄 알면서 그냥 보낼 수는 없더군요. 하나님께서 보시는데, “그걸 알고도 그냥 보냈냐?” 하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제게 오는 악기들은 비용과 상관없이 손질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30년 넘게 이 일을 해 오셨군요. 중간에 멈추고 싶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다른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학기를 많이 타고, 비수기도 분명히 있거든요. 게다가 인터넷이 생기면서 가격 구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판매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고장 나서 찾아오는 악기를 고쳐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손님에게 직접 줄을 사 오라 해서 저는 갈아 주기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수입을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는 구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걱정도 많죠. 그런데도 저는 이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요즘 AI가 못하는 게 거의 없는데, 그래도 AI가 못하는 게 하나는 있다고요. 이 일입니다. 손으로 만지고, 소리를 듣고, 감각으로 판단하는 일은 아직 기계가 대신할 수 없거든요. 비록 큰돈이 되지는 않지만, 이 일은 제가 손만 놓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공방에 들어온 악기 가운데, 장로님조차 ‘이건 정말 살아나기 어렵겠다’고 느끼셨던 악기가 있었을까요?


대구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습니다. 비올라였는데, 뒤로 넘어지면서 크게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일단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웬만하면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니 앞판이 완전히 박살 난 거예요. 솔직히 웬만하면 그냥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심각했어요. 그래도 조각조각 맞춰 가며 결국 완벽하게 살려 냈습니다. 그분이 엄청 좋아했죠. 게다가 겉모습만 복원한 게 아니라, 소리가 변했다는 게 중요해요. 기껏 고쳤는데 소리가 그대로라면, 저는 그걸 수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악기가 와도 제가 손을 대면 반드시 소리가 달라지게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많이 망가져서 오는 악기들이 더 좋고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악기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그런 경우들을 통해 자주 느끼게 되죠.

악기를 마주할 때, 기술보다 먼저 장로님 마음에 떠오르는 기준이나 태도가 있으신가요?


악기를 보면 먼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문제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연주해 온 경우가 많거든요. 스승도, 본인도 모른 채 그냥 써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진작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콩쿠르나 연주회를 다 마치고 나서야 올 때도 많은데 그러면 정말 안타깝죠. 그렇게 저는 악기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악기를 써 온 사람도 함께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게 ‘살려야 한다’는 앞뒤 재지 않고 생기는 당연한 마음입니다. 문제는 꼭 손질이 필요한 상태인데도 비용 때문에 그냥 쓰겠다고 할 때입니다. 그럴 때는 그냥 못 보냅니다.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라고 하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합니다. 나중에 형편이 되면 그때 갚든지 알아서 하라며 일단 수리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찾으러 올 때 음료수라도 한 잔 들고 오기도 하지요.(웃음)



만드는 일과 고치는 일은 닮았으면서도 결이 다른 작업처럼 보입니다. 장로님이 오랜 시간 ‘수리’라는 자리를 지키신 이유가 있을까요?


만드는 일은 과정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교과서대로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수리는 똑같이 망가진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다르게 망가져요. 조금씩 다 다르게요. 그게 재밌어요. 그래서 성취감도 더 크고요. 또 만드는 건 시설이 많이 필요해요. 기구도 비싸고, 먼지도 너무 많이 나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저는 수리가 맞더라고요.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욕심이 안 나요. 만드는 일은 아들이 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수리는 다 사연이 있잖아요. 부러지고 고장 난 이유가 전부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일하는 것 자체가 늘 도전입니다. ‘이번엔 얘랑 또 어떻게 해 볼까?’ 그런 마음이 들어요. 30년 넘게 하다 보니 웬만한 건 다 겪어 봤지만, 여전히 생소한 경우도 나오고요. 아주 힘들겠다 싶었던 일들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점들이 이 자리를 오래 지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수리 과정에서 나온 작은 조각이나 가루까지도 다시 사용하는 작업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태도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장로님의 신앙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껴집니다.


브리지 작업을 하다 보면 사포질하면서 가루가 나오거든요. 저는 그걸 다 모아 둬요. 꼭 필요할 때가 있어요. 아주 미세해서 나무 조각을 끼워 넣을 수 없는 부분에 그 가루를 싹 메우면 딱 맞아요. 이거 쓰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또 작업하다 보면 검정 가루도 나오는데, 그것도 다 모아 둡니다. 이게 더 강력해요. 접착제를 바르고 이 가루를 넣으면 쇠까지도 붙어요. 완벽하게요. 이런 방식을 써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건 무조건 다 교체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러면 소비자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죠. 저는 이 가루로 메워서 그대로 살립니다. 전혀 다른 선택이죠. 

저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웬만하면 다 살리려고 해요. 작업에서 나온 가루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기능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것들에게 다시 역할을 주는 거죠. 저기 보이는 조명도 버려진 옷걸이로 만든 거예요. 그러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버리지 않고 쓰시는 분이구나 하고요.



신앙생활을 시작한 때와 지금을 돌아볼 때, 시간 속에서 달라진 부분과 여전히 붙들고 있는 믿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아내를 중매로 만났거든요. 숙모가 다니던 교회에 다니던 아가씨였는데, 교회 교사도 하고 있던 친구였죠. 선보는 자리에서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랑 결혼하려면 교회를 꼭 다녀야 하고, 십일조 생활도 꼭 해야 한다고요. 그때 저희 집안은 교회를 다니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아내도 집에서는 혼자 교회를 다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도 굉장히 분명하게 말하더라고요. 교회도 십일조도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학교 후배이고 인상도 귀여웠거든요. 

그 약속을 하고 나서,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계속 지켜 오고 있어요. 그 모습을 하나님 보시기에 ‘잘하고 있구나’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신앙은 아주 빠르진 않아도 꾸준히 자라왔어요. 돌이켜 보면 신앙적으로 변한 건 성장이고, 변하지 않은 건 그때 했던 약속을 붙들고 살아온 거죠. 사람들한테는 팔불출 소리 들으면서도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당신이 복덩어리야!”

악기를 살리는 일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장로님께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교회를 다니면서 수지침을 배웠어요. 그걸 처음 접할 때부터 마음에 있었던 게 있어요. 몸의 한 부분이 회복되면 사람 전체가 살아나듯이, 악기도 고쳐지면 그 울림을 통해 사람도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단순히 고친다는 마음보다는,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악기가 다시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이 풀리고, 위로를 받는다면… 악기도 살아나고, 사람도 살아나는 거잖아요.

저는 그 과정이 부활과 닮아 있다고 느껴요.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던 악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 결국 같은 맥락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악기를 고친다기보다 죽어 있던 악기를 다시 살린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공방이라는 이 공간 안에서, 장로님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가끔 손님들이 묻습니다. “이걸 누구한테 배웠냐”고요. 저는 배운 적도, 저를 가르쳐 준 스승도 없다고 말해요. 그 대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생각을 주시고, 감각을 주시고, 방법을 깨닫게 해 주셨다, 그러니 제 스승은 하나님이라고요.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런 재능과 감각을 주신 것 같다고, 그러니 당신도 그런 믿음을 가져 보면 좋겠다고요. 억지로 권하는 건 아니고, 그냥 제 삶에서 나온 이야기죠.

지난주에도 엄마와 아들이 함께 공방에 왔어요. 교회 다니냐고 물었더니 친정어머니는 다니시는데 자기는 안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따님과 손주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시겠냐고, 어머니가 제일 기뻐하실 일은 모두 예수님 믿고 교회 나가는 거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어요. 헤어지기 전에 꼭 교회에 가길 바란다며 기도하고 보냈는데, 집에 가서 문자가 왔어요. 축복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공방 안에 늘 찬양이 흘러나오게 합니다. 특별히 전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그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면서요.



이곳은 노동의 자리이자 예배의 자리처럼 느껴집니다. 일과 예배의 경계는 어디에서 만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배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악기를 고치다 보면 늘 이런 마음이 들어요. ‘이걸 해 주면 이 사람이 얼마나 좋아할까.’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비용 이야기 같은 경우도 그래요.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저도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데, 알고도 외면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해 주는 거죠. 그게 꼭 전도나 선교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더라도 그 방향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삶과 태도 자체로 전해지는 게 있으니까요. 

요즘은 워라밸이라고 해서 일과 삶을 나누려 하지만, 저는 그게 좀 안타깝습니다. 제게는 이 일이 곧 삶이고, 그 삶 안에 신앙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습니다.



‘남은 삶도 이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고백에는 직업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지켜 오며 하나님께서 장로님 삶에 맺게 하신 성령의 열매가 있다면요?


제가 하는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거의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사랑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기뻐해야 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고객의 만족감을 통해 느끼는 성취감이 곧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 기쁨 안에는 반드시 사랑이 들어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악기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니까 끝까지 살려 보려고 애쓰는 거죠. 사랑이 없으면 “그냥 가져가세요” 하고 말았을 겁니다. 잘 고쳐 주고, 기분 좋게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은 결국 사랑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부활절을 맞아, 지금 삶이 망가졌다고 느끼거나 스스로를 포기한 이들에게 장로님은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으신가요.


우리 생명 자체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은 예수님을 찾으면 된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예수님 안에서 전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면, 분명히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게 부활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나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분들은 그걸 쉽게 느끼지 못하죠.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실 제 자녀들도 아직은 그 믿음이 온전히 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아이들이 믿음 위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성령께서 마음을 만져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말해 주고 싶어요. 정말 삶이 끝난 것 같을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예수님을 찾으라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믿기만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이름 말고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저는 이 삶을 통해 믿게 됐습니다. 겉으로 교회만 드나드는 신앙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붙드는 믿음이라면 누구든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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