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우리는 기쁘게 망하겠습니다
Guideposts 2026 |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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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쁘게 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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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자원재생 활동가’라 부르기까지, 세상의 시선을 돌려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에게 그 시작은 명확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 던져진 질문, ‘그렇다면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그는 그 답을 거리에서 만난 어르신들 가운데서 찾았다. ‘이웃 사랑’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새로운 이름을 불러 주고 관계를 잇는 일을 14년째 이어 오고 있다. 그의 사역은 단순한 일자리 지원을 넘어 존엄과 관계 그리고 다시 ‘설렘’을 회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는 말한다. “어르신들의 삶이 바뀌는 날, 우리는 망하겠습니다.” 그 역설적인 고백 속에는, 이웃을 향한 시선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한 크리스천의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다.
러블리페이퍼를 시작하시기 전, 안정적인 삶의 궤도를 벗어나 ‘폐지’라는 현장에 시선을 두게 된 결정적인 삶의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
20대 때는 ‘나를 위한 삶’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제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정리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받은 비전이 ‘하나님의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서른 살이 되던 시점에 더 이상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길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고,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육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몇 년이 지나 학교가 안정되자, 오히려 제 안에 ‘남는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때 생각난 말씀이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이웃일까?’ 이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적 경제 아카데미’라는 현수막을 보게 됐고, 왠지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지역의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그 말이 제 신앙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지역의 사회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어르신들의 사진을 몰래 찍고 다녔어요. 용기가 없었던 거죠. 그렇게 자료를 찾아보고 현장을 다니면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3개월 정도 사진을 찍고 다녔을 즈음이었어요. 리어카도 없이 폐지를 몸으로 끌고 언덕을 올라가시는 어르신을 봤는데, 그때 저는 출근길이라 사진만 찍고 지나쳤어요. 출근 후 쉬는 시간에 그 사진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나는 한 번도 이분들을 도우려고 작정하고 나간 적이 없구나.’ 그날 이후 행동이 바뀌었습니다. 토요일마다 현장에 나가 어르신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러블리페이퍼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 여정에서 내린 가장 ‘의미 있는 결정’과, 역설적으로 대표님을 성장시킨 ‘의미 있는 실패’는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돌아보면 모든 시간이 다 감사하지만, 굳이 하나의 전환점을 꼽자면 2018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학교 교사와 러블리페이퍼를 약 7년간 병행하며 바쁘지만 의미 있게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2018년 여름, 갑작스럽게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다리가 심하게 붓기 시작했고, 결국 만성 신장 질환 판정을 받게 됐습니다. 치료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강한 약을 복용해야 했고, 식단 제한으로 일상의 기본적인 즐거움마저 무너졌습니다. 학교에서는 고3 담임으로 입시를 준비해야 했고, 러블리페이퍼 역시 중요한 시기라 업무 강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돌다가 들어가기도 했고, 깊은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이 상태로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2019년, 학교를 내려놓고 러블리페이퍼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학교를 세우는 비전’이 있었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함께하던 아이들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더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이후에는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 위에 기업가 정신과 창업을 가르치는 교육 모델을 구체적으로 그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18년의 아픔은 실패라기보다 방향을 재정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표님께 ‘예수 안에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그 신앙의 고백이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어느 순간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웃’이나 ‘영혼’이 아니라 조직과 사업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계기는 한 기독교 리더십 교육 과정에서였습니다. “일터를 선교지로 살아간다”는 말씀을 듣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돌아보니 제 삶과 기록에는 신앙의 고백보다 성과와 결과가 앞서 있었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사역’이 아니라 ‘사업’에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후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제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일상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는 오늘을 온전하게 하나님 안에서 살았는가,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가’라는 질문이 제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결과보다 사람을, 성과보다 관계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전에는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존재이자 분명한 가치를 지닌 분들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폐지 줍는 어르신’ 대신 ‘자원재생 활동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피조물의 이름을 붙이라 하시잖아요. 사람은 이름을 붙이는 존재이고, 그 이름이 시선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분들을 ‘불쌍한 노인’으로 정의해 왔지만, 실제로는 환경과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가치가 드러나는 이름으로 다시 부르고 싶었습니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자원재생 활동가’라고 부르기로 하셨습니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존중의 언어’를 선택하신 이유와, 그분들의 정서적 회복까지 책임지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보면 대부분 혼자 활동하시고, 하루를 보내신 뒤에도 혼자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힘들고 수입이 적은 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 이면의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면 그 인사를 유난히 반갑게 받아 주시는데, 그 모습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 주는 경험 자체가 많지 않으셨던 거죠. 그래서 저희는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이 외로움과 정서적 결핍을 어떻게 덜어 드릴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자원재생 활동가’라는 명칭 역시 그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분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주체로 바라보게 되면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점차 확장되고 있습니다. 명칭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과 기관들도 같은 시선으로 어르신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다양한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42개 기관과 네트워크를 갖고 전국에 2,500명가량의 어르신을 지원했고 강동사회복지관 등과 MOU를 맺었어요.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사회 안으로 다시 연결하는 시도를 해 왔는데, 청년들과의 교류나 지역 안에서 관계를 맺도록 돕는 프로그램들도 그 일환입니다. 저희가 시도한 모델들이 다른 기관으로 확산되어 각 지역에서 새롭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의미 있게 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오면서, 유독 마음 한구석에 깊이 남아 잊히지 않는 한 분의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실 한 분을 꼽기 어려울 만큼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정순자 어르신 이야기를 꼭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정순자 어르신은 현재 87세인데 2019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고장 난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모으고 계셨는데, 제가 손수레를 지원해 드리려고 동네를 다니던 중에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 인사하면서 “어르신, 정말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인연으로 사무실에 모시게 되었고, 함께 일해 보겠냐고 제안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벌써 7년째 함께하고 계십니다. 연세도 많고 몇 번 다쳐서 병원을 오가신 적도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 나오시는 모습이 참 감사합니다. 어느 날 어르신께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러블리페이퍼에 오시기 전과 지금,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저는 소득이 늘었다거나 일이 편해졌다는 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눈뜨면 갈 데가 있고, 가면 같이 일할 친구가 있고, 젊은 사람들하고 웃으면서 일하고, 또 월급도 받고… 평생 이런 직장은 처음이에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마 전에는 팀원들과 함께 어르신들을 모시고 벚꽃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어르신께서 “너무 설렌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표현이 제게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단순히 소득이나 환경을 넘어 어르신들이 다시 설렐 수 있는 삶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또 한 분, 정혁분 어르신도 잊히지 않습니다. 2017년 대안학교 근처에서 밤마다 깡통을 줍던 어르신인데, 제가 처음 만난 날 드린 연락처를 2년 동안 간직하셨다가 다시 만났을 때 보여 주시더라고요.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함께 일하시다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지금도 종종 연락을 나누고 있습니다.
매년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함께 떠나는 ‘일일 나들이’를 이어 오고 계신데요, 이 시간이 어떤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먼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처음 시작은 2018년이었습니다. 인천 계양구의 어르신 협동조합과 함께, 어르신들과 청년들을 따로 모집해 가평으로 나들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회성 프로그램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들이 이후 청년들과 어르신들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안부를 묻는 관계로 이어진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만날 기회를 너무 만들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만나기만 해도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 2019년에는 관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평의 온세계교회 청년들과 지역 어르신들을 2~3명씩 짝지어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했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참여했던 청년이 결혼 후에도 그 어르신을 계속 찾아뵙는 모습을 보며, 이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 가야 할 사역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 다시 나들이와 프로그램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청년 서포터즈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며, 이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단순한 나들이를 넘어, 서로의 삶이 연결되는 출발점이자 관계가 이어지는 통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이 일이 거대한 노인 빈곤 문제 앞에서 ‘국소적일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고백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매년 연초가 되면 일주일 동안 새벽 기도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돌아보면 늘 ‘불안’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버틸 수 있을까’ ‘작년의 기적 같은 일들이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죠. 그 불안 때문에 더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그 불안 없이 한 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의 지지와 후원을 통해 조직이 자립에 가까운 단계로 나아가면서, 이 일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힘은 거창한 계기라기보다, 일상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길이 열리고 위험을 피하게 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쌓여 갔습니다.
이제는 불안 속에서 버티는 단계를 넘어, 조직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부 확장보다 팀원들의 성장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조직의 성장은 사람의 성장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일이 한 사람에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이 사명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조직의 청년성과 생동감을 유지하며 다음 세대로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이양하는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환경 논의가 주로 플라스틱에 집중될 때, ‘폐지’라는 영역의 가치를 발견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역할과 환경이 연결된 지점은 무엇이었으며, 현재 이 사역이 창조 세계 회복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처음에 환경을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르신들의 문제에 집중한 게 그 출발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저희가 친환경 제품을 만들게 되었고, 마침 그때가 환경 이슈가 확 올라오던 때였어요. 주변에서 “너네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데 왜 이것도 마케팅 안 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조언을 들으면서 저희가 실제로 만들어 내는 환경적인 수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폐지 사업이 갖고 있는 환경적 가치도 조사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탄소 절감 효과를 많이 만들어 내고 있더라고요. 그 부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친고령’뿐 아니라 ‘친환경’ 그리고 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체인지 메이커 상’을 받았는데, 그것도 환경 분야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의도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는데, 환경적인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저도 조금 놀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2020년 이후로 환경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속 파고들다 보니, 어르신들의 역할과 환경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단순히 생계를 위해 폐지를 수집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또렷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히 폐지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독보적인 자원 재활용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자원 재활용률이 높은 편이고, 그 안에서도 폐지는 매우 높은 회수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해외에서는 ‘웨이스트 피커(waste picker)’들이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환경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가치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응원해 주시는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표님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 지는 아내는 어떤 분인가요?
저희 아내는 저보다 한 살 많아 처음엔 ‘누나’라고 부르며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제가 흔들릴 때마다 기준을 잡아 주고, 중요한 순간마다 지혜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밝은 에너지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밖에서 많은 에너지를 쓰고 돌아오면, 아내를 통해 다시 힘을 얻습니다. 가정이든 일터든,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마지막 기준이 되어 주는 사람도 아내입니다. 20년을 함께 지나며 쌓인 신뢰는 이제 확신이 되었습니다.
결혼 초에는 정말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바닥이라고 느낄 만큼 어려웠고, 무리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습니다. 돌도 안 된 아기를 안고 아내가 저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던 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집에 급여조차 가져가지 못할 만큼 상황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중심을 잡아 주며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덕분에 다시 버티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결혼 20주년을 맞아 신혼 여행지였던 발리를 다시 다녀왔습니다. 같은 장소에 둘이 다시 서서 아무 근심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함께 걸어갈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감사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 지나왔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독립한 이후, 아내와 단둘이 살아갈 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의 삶에서 영글어 가는 성령의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이 캔버스 아트(폐박스를 캔버스 형태로 재가공해 작가의 작품부터 일반인의 창작까지 연결하는 친환경 참여형 아트 키트-편집자 주)와 어르신들의 웃음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요? 혹시 여전히 ‘더 자라 가야 한다’고 느끼는 부족한 부분도 있으신지요?
저는 아직 잘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정말 잘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온유함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어르신들을 대할 때도 그렇고, 온유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하는 온유함은 그런 거예요. 너무 들떠 있지도 않고, 성과가 좋다고 해서 막 올라가지도 않고, 또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것. 처음과 끝의 편차가 크지 않고, 일정한 파동으로 이어지는 상태. 아침과 저녁의 감정과 기분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상태. 저는 그게 온유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온유하려면 절제가 꼭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이 올라올 때 그대로 반응하지 않고, 한 번 붙잡고 다스리는 힘. 그게 있어야 온유함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니 그런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20대, 30대 때의 저는 장난 아니었거든요. 대안학교 교사할 때 아이들이랑 정말 치열하게 살았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열혈청년’이라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저에게 그런 온유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저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께도, 또 함께하는 팀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도 조금 더 그렇게 됐으면 좋겠고요. 많은 사람들이 어르신들을 볼 때, 힘듦만 보는 게 아니라 그분들의 가치도 함께 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제 안에 있습니다.
“어르신들 삶이 바뀌는 날, 우리는 망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은 참 역설적이고도 아름답습니다. 그 약속에 담긴 의미와, 그날을 향해 나아가며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비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사실 이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묵상하면서 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죽음이 있었잖아요. 그 죽음은 이 세상에서 보면 끝인데, 그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고, 그 부활로 세상이 새롭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러블리페이퍼가 생긴 이유도 분명합니다. 세상이 아직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조직이거든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는 일들로 인해 세상이 더 온전해진다면, 그때 우리의 ‘망함’은 예수님의 죽음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생겨날 새로운 조직들, 또 이곳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의 변화는 ‘부활’과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멋지게 망한다’는 말을 단순한 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올 더 큰 변화, 더 큰 임팩트를 기대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조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훨씬 더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망한 이후에는 이 분야에서 더 멋진 사람들, 더 좋은 활동가들과 조직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갈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망하는 시점’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가 아니라, 언제 문을 닫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일 때 우리의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어르신들을 위한 자원재생 활동이 국가의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때입니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 조례 수준에서 일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물품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가 만든 ‘자원재생통합지원센터’ 같은 모델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거나, 기존 복지관과 노인 관련 기관 안에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들어가고, 그것이 국가의 법과 제도로 보장되고 지원되는 단계까지 간다면 그때는 저희가 해야 할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저희는 기쁘게 ‘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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