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어여쁜 자야, 함께 가자
Guideposts 2026 |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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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자야,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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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들을 쉽게 ‘문제아’라고 규정하고, 교회조차 복음의 문턱을 낮추기보다 판단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청소년 미혼모를 향한 단편적인 정책은 존재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청소년부모’들은 여전히 제도와 관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배보은 대표는 수많은 상처 속에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을 위대한 ‘생존자’이자 하나님이 지으신 ‘왕의 자녀’라고 부른다. 우연히 마주한 반지하 방의 어린 임신부에게 건넨 작은 온정은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위기청소년과 청소년부모의 존귀함을 회복시키는 공동체 ‘킹메이커(Kingmaker)’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판단하고 가르치기보다 먼저 곁에 머물며 밥을 먹여 주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 “좋은 어른 한 사람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아이들의 삶 한가운데로 뛰어든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를 만나, 한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따뜻하고 가슴 벅찬 여정의 이야기를 나눴다.
2015년 한 청소년부모와의 만남이 지금의 킹메이커로 이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의 삶을 바꾸어 놓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원래 청소년 사역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사회복지사도 아니었고요. 그냥 가정주부였습니다. 2015년에 우연히 ‘위기청소년캠프’에 2박 3일 봉사자로 갔는데, 만삭인 청소년 부부 세 커플을 만났어요. 다들 나이가 어려 출산 경험이 없으니, 아이 키워 본 30대 아줌마인 저한테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배는 이만큼 불러서 양육 물품 하나 없는 게 밟혀서, 캠프 끝나고 동네 엄마들한테서 안 쓰는 아기용품을 세 박스나 모아 그 아이 집을 찾아갔죠.
그런데 반지하 방에 얇은 이불 하나 깔고 만삭으로 누워 있는 거예요. 며칠 굶고 있다기에 밥을 해주려니 밥통이 없고, 햇반을 사주려니 전자레인지가 없고, 플레이크라도 말아 먹이려고 하니 숟가락이 없고… 기가 막힌 상황이었어요. 밤에 집에 가서 전자레인지랑 살림살이 챙겨 와서 새벽 1시에 밥 먹이고 나란히 누워 그 아이가 살아온 얘기를 들었어요. 중3 때 새아빠한테 당한 학대와 방임, 정신병원 탈출까지… 숨이 턱턱 막히더라고요. 내가 물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왜 애를 낳으려고 그래? 못 키울 것 같은데.” 그랬더니 그 아이가 절 쳐다보면서 “생명이잖아요. 선생님은 교회 다니는데 그것도 몰라요?” 하는 거예요. 저 같으면 진작 잘못되었을 텐데…. 그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죠. ‘내가 대단한 사역은 못해도, 출산할 때까지만 이 아이 하나 도와주자’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간 게 킹메이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품게 된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마음 아픈 현실도 많이 마주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역을 이어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 대표님을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사명감이나 거창한 비전이 있던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린 부모의 임신과 출산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만삭인 딸을 협박하는 엄마, 도움을 구하러 구청에 갔더니 “친권자법이 그렇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더군요. 결국 2019년까지 온전히 자비량으로 도왔습니다. 한 가정이 자립하기까지 보통 2천만 원 이상이 드는데, 다섯 가정을 지원하다 보니 결국 재정적 한계가 왔습니다. 내 가정도 돌봐야 하니 사역을 정리하려 마음먹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게 혹시 제 의(義)였나요? 그렇다면 빨리 돌이키게 해주세요.” 그때 한 목사님을 통해 대언 기도가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지금은 침륜에 빠질 때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지니라. 그리고 너는 앞으로의 모든 것을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여태까지 코람데오, 내게 한 것을 내가 다 받았다. 그리고 보았다. 이제 하늘 창고를 열어 내 자녀들을 먹일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 걸어라.”
당장 월세와 카드값이 급했고 마지막 차까지 판 직후라 막막했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분사업재단법인에서 청소년부모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이틀 뒤에는 새로운교회(담임목사 한홍)에서 가정의 달 헌금이 모아졌다며 그달 갚아야 했던 빚만큼 돈을 보내 주었어요. 연이어 사역에 쓰라며 자동차까지 기증받았죠. 빚이 해결되고, 차와 사업비가 생기니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이어 가면서 우리나라 제도의 모순도 보게 되었습니다. 미혼모나 한부모가 되어야만 지원을 해주고, 가정을 이루면 지원을 끊어 버리니 아이들이 거짓말을 선택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생명을 낳아 가정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정직한 출발을 돕고 싶었습니다. ‘청소년부모’라는 말을 만들고 사각지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청소년부모 생활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도 직접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나 비영리를 잘 아는 전문가였다면 두려워서 못 했을 겁니다. 그저 동네 아줌마의 무모한 순종이었기에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었죠. 이를 통해 국회 토론회가 열리고 ‘청소년부모지원법’이 제정되기까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부담을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사명을 기가 막히게 풀어 가시는 분은 온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킹메이커(Kingmaker)’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과 기도가 담겨 있나요?
처음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위기청소년으로 태어나는 애는 없잖아요. 다 똑같이 뽀얗고 예쁘게 태어나는데 왜 이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존엄이 없을까 분통이 터졌죠. 왕자와 거지 이야기처럼, 이 아이들도 원래 하나님이 존귀하게 만든 ‘왕의 자녀’인데 잠시 신분을 잃고 거지 옷을 입었을 뿐이에요. 아이들에게 늘 말해요. “너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게 아니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게 해줄게.” 대통령 하나 만들 때도 머리부터 옷, 언변까지 온갖 분야의 킹메이커들이 붙잖아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킹메이커가 필요하겠어요. 다른 단체들은 소박하고 겸손한 이름을 쓰지만, 저는 이 아이들의 설정값 자체를 처음부터 높여 놓고 싶었어요. 불쌍한 이웃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에만 머물고 싶지 않았던 거죠. 우리는 왕을 세우는 킹메이커입니다.
그리고 진짜 제 삶의 킹메이커는 지금 함께하는 우리 스태프들이에요. 2021년까지만 해도 컴퓨터 한 대 놓고 상담부터 전국 출장까지 저 혼자 다 했어요. 외부 사람들이 와서 직원 숨겨 놓은 거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죠. 그러다 하나님이 스태프들을 붙여 주셨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키워 낸 청소년부모들이 3~4년의 인턴십을 거쳐 이제는 단체의 디자인과 회계를 도맡는 스태프가 됐습니다. 여전히 혼자였다면 벌써 포기했을 텐데, 이제는 분업과 협업이 되는 ‘팀 킹메이커’를 이루었으니 이분들이야말로 진짜 킹메이커입니다.
치열한 사역의 최전선에 서 계신데, 대표님에게 ‘가정’은 어떤 공간이며 남편분은 어떤 존재인가요?
원래 불신자였던 남편은 기본 인품이 참 좋은 사람이에요. 결혼하고 제가 사역자도 아닐 때부터 애들 만나느라 돈을 많이 썼는데 단 한 번도 “돈 왜 쓰냐, 아깝다”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10년 넘게 묵묵히 제 사역을 지켜봐 주었어요. 그러다 10년 전에 남편이 하나님을 진하게 만나 회심했고, 불신자로 살았던 자신의 청춘이 너무 아깝다며, 제 사역을 누구보다 고마워하고 존경해 줍니다. 성격도 성품도 저랑 정반대인 남편의 신앙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기만 해요. 지금은 기도로 소통하는 가장 든든한 영적 동역자입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저만 보면 설렌다는 남편, 사랑 많고 애교 넘치는 쌍둥이 아들이 있는 우리 가정은 제가 치열한 사역 현장에서 돌아와 숨을 쉬고 충전받는 유일한 도피처입니다.
대표님은 위기청소년과 청소년부모를 ‘생존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가까이에서 만난 이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며, 사회가 가장 크게 오해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세상은 이 아이들을 ‘사고 친 애, 나쁜 애, 문신하고 담배 피우는 문제아’로만 봐요. 하지만 그건 철저하게 결과만 보고 한 오해입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 중 가정이 해체되지 않은 애가 거의 없어요. 아동학대, 방임, 유기를 겪으며 부모가 나서 줘야 할 때 늘 혼자였던 아이들이에요. 그 잔인한 방임과 학대 속에서 견뎌 낸 아이들입니다. 게다가 자기도 사랑받아 본 적 없으면서 생명을 살리겠다고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해 부모가 됐어요. 이 비상식적인 성장 과정을 겪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제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이들을 ‘생존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아시니까요. 어떤 아이라도 그런 불행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면 과연 이들보다 바르게 살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킹메이커의 핵심 표어가 ‘좋은 어른 이웃’이라고 들었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이며, 오늘날 왜 그런 어른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이 아이들은 살면서 화내지 않는 사람, 기본적인 도덕성을 지키는 ‘보통의 어른’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살고 있을 뿐인데, 세상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비난만 하죠. 본 적도 없는 모습을 어떻게 따라 하겠어요. 그건 너무 잔인한 요구예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대단한 교육이나 훈계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보통의 상식적인 삶, 밥을 챙겨 주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삶’을 눈앞에서 보여 주는 어른이에요. 물론 저와 봉사자들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줄 순 없지만 옆에서 ‘좋은 어른 이웃’으로 존재하며 상식적인 삶을 계속 보여 준다면, 아이들도 그걸 보고 바르게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불편한 시선이 아니라 말 걸어 주고 지켜봐 주는 보통의 어른 한 사람입니다.
인터베이팅하우스(청소년부모가 독립 전 자립 역량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주거 공간-편집자 주)와 초밀착 사례 관리는 킹메이커를 대표하는 사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필요를 발견하며 시작하게 되었고, 일반적인 지원 사업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일반적인 복지 사업은 대개 현금이나 물품을 주고 영수증을 받는 형태로 끝납니다. 예컨대 냉장고나 세탁기를 지원한다면 돈을 주고 사진을 받아 첨부하는 식이죠. 하지만 청소년부모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정작 그 가전이 자기 집에 들어갈 크기인지, 설치조차 안 되는 상태인지 잘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세탁기를 어떻게 돌리고 고장 나면 어떻게 고치는지, 음식물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고 공과금은 왜 밀리는지 같은 생활 역량이 거의 없습니다. 일반 가정의 대학생 자녀들도 자취하려면 온 가족이 매달려 챙겨 주는데 18, 19세 아이들이 출산을 했다고 해서 저절로 부모 역할과 살림을 잘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링크를 보내 주며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고 현장에 붙어서 쓰레기를 치우고 분리하는 법부터 재정 관리하는 법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이합니다. 아이들이 손 하나 까딱 않고 방에서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어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1년을 계속해 줍니다. 보통 어른들의 삶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기에, 먼저 보여 주고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들이 쓱 다가와 “뭘 도울까요?” 하며 따라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주거 지원의 경우, 일반 기관은 대상자 본인 이름으로 계약하지만 킹메이커는 단체가 2년 동안 먼저 계약을 맺고 운영합니다. 보증금만 지원해 주면 집 관리가 되지 않아 효과가 없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지원 종결’이라는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아이들도 약속을 지키고 훈련에 임합니다. 돌봄과 관리를 받아 보지 못한 아이들은 생활 코칭을 받으면서, 비로소 공과금이 밀리지 않고 집이 유지되는 ‘삶의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빚지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면, 아이들 내면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해요. 중졸이던 아이가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가고, 자격증을 따서 간호조무사나 사회복지사로 떳떳하게 취업해 나갑니다. 킹메이커의 초밀착 관리는 정해진 회기나 서류 기준에 아이들을 맞추는 복지가 아니라, 아이의 삶 전체를 부모의 마음으로 설계하고 자립할 때까지 동행하는 맞춤형 사역입니다.
수많은 선교 사역이 존재하지만 청소년부모들은 철저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들을 품기 위해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은 길 가다가 “예수 믿으세요” 하는 말 한마디 들어 본 적이 없대요. 진짜 “너희는 어디서 전도도 못 받아 봤니?” 소리가 절로 나와요. 이 아이들한테 “우리 교회에 한번 나와 봐” 하고 다가온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들을 기독교 캠프에 데려가면요, 예배당 들어가겠다고 두 시간씩 밥을 끊고 줄을 서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예배를 드립니다. 은혜를 받겠다고 우는데, 그걸 보면 제가 진짜 부끄러워서 쪼그라든다니까요. 아이들은 이렇게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해요.
그렇기에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건, 자기 기준의 ‘의로움’과 ‘판단’을 버리는 겁니다. “왜 십 대가 임신을 했냐” “왜 애를 저렇게 키우냐”라며 비판부터 하는데, 그 아이들의 성장 환경을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예요. 비난하지 않고 그냥 밥 한끼 먹여 주고 애 한번 봐 주는 본능적인 품이 필요해요. 새로운 가정을 꾸린 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가정이 멘토가 되고 목장이 되어 주고, 교회 역시 앞서 말씀드린 ‘좋은 어른’이 되어 주는 것. 판단하지 않고 그저 좋은 이웃으로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 교회가 회복해야 할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역을 이어 오며 하나님께 가장 깊이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대표님의 내면에 맺게 하신 성령의 열매가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세상 잣대로는 결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 자체입니다. 세상은 이 아이들을 손가락질하지만, 예배 자리에 나와 손을 들고 펑펑 울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너희는 매주 예배드리지만, 이 아이들은 예배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어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저는 완전히 깨어집니다.
최근에도 기가 막힌 일화가 있습니다. 기숙사에 있는 둘째 아들이 맥도날드 한정판 컵을 사달라고 전화를 해왔어요. 마침 일이 일찍 끝나 차를 몰고 가 햄버거 세트 10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부모 다섯 가정을 돌며 ‘햄버거 셔틀’을 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날 한 아이 아빠는 아침부터 9시간 동안 예비군 신검을 받고 쫄딱 굶은 채 돌아왔고, 어떤 엄마는 아픈 아기를 안고 병원에서 이제 막 지쳐서 돌아오던 참이었습니다. 고단하고 배고파서 터덕터덕 집으로 들어오던 아이들 손에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따뜻한 햄버거가 쥐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으셔서, 저 멀리 있는 제 아들의 전화를 통해 저를 움직이신 겁니다. ‘내가 그래도 대표인데 빵 셔틀을 시키시냐’고 투덜거리다가도, 햄버거를 받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 하나님의 치밀한 사랑에 소름이 돋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늘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싶은지 네가 내 입장이 되어 한 명만 더 품어 줄 수 없겠니.” 11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사고를 쳐도 제가 지치거나 소진되지 않았던 비결은 바로 이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맺게 하신 가장 큰 열매는 낙심하지 않는 ‘긍휼의 마음’과, 모든 자원을 마르지 않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감사’입니다.
홀로 감당해야 하는 위기와 두려움의 순간들이 있을 텐데요, 그 무게를 어떻게 이겨 내시는지요? 더불어 앞으로 킹메이커가 그려 갈 다음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많은 이들이 저를 대단하다고 말하며 박수를 보내고 존경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은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게 가장 두려운 것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시는 주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건 아니죠? 제 옆과 제 앞에 계신 게 맞죠?”
때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생명을 놓치거나 큰 사건 사고가 터지는 등 감당하기 힘든 위기도 찾아옵니다. 깊은 의문이 들 때마다 하나님 앞에 “주님,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늘 명확하게 답해 주십니다. “내가 알지, 그리고 내가 다 봤다.”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고 다 보셨다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은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0)며 저를 다시 부르십니다. 대장이 책임지는 것이니 저는 그저 시키시는 일만 어여쁘게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킹메이커의 다음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언제 은퇴할 거냐고 물으면 저는 늘 “재미없어지면요”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아이들을 계속 보내 주시는 한, 우리는 이 사역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예산을 먼저 짜지 않아도 숟가락 하나까지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하늘나라 헤드헌터들이 가장 탐내는 일 잘하는 동역자로 아이들의 삶에 좋은 어른 이웃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끝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곁에서 좋은 어른이 되어 주기 위해 애쓰는 분들, 그리고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소년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 결코 네 잘못이 아니야. 단지 기회를 얻지 못했고 바른 교육과 돌봄을 받지 못했을 뿐이야.” 아동심리학자나 뇌과학자들은 영유아기에 결핍을 겪은 아이들은 이미 발달이 끝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저희 역시 아이들에게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기만 굶기지 말고 상처 주지 말자’가 목표였지요. 거기에 더해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그건 거짓말이고 그건 아동학대야”라고 도덕적 규범과 훈육을 하며 보통의 사랑을 주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열 명 중 한 명만 바뀌어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열 명 중 아홉 명이 불같이 일어나 삶을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쁜 게 아니라 단 한 번도 ‘좋은 어른’을 만나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것뿐이었습니다. 청소년부모들은 아직 자아가 굳지 않아 탄성이 좋습니다. 인생이 끝났다고 낙심하지 말고, 내 삶에 개입해 줄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님들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주변에 홀로 버티는 미혼모나 청소년부모가 있다면, 단순히 안타까워하는 데서 멈추지 말아주세요. 아이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오직 하나, 세상 모두가 자기를 비난할 때 유일하게 다가와 이쁘다 말해 주고 밥 사주는 ‘나쁜 손길’의 온기라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만난 날부터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고 선한 이웃과 좋은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세요.” 내가 직접 좋은 어른이 되어 주지 못하더라도, 기도는 그 아이의 삶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붙여 주는 통로가 되니까요.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을 넘어 아이들을 세우는 진짜 ‘킹메이커(Kingmaker)’가 되어 줄 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킹(King)’으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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