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17

                         Finding a Path

Sharing the Pain

우울증 극복기

He jumped because he thought he had nothing to live for.
He found out otherwise

그는 이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JOHN GALLAGHER Worcester, Pennsylvania

존 갤러거 펜실베이니아 주 우스터

That Sunday my wife, Trish, had gone to Mass without me as usual. As much as I wanted our marriage, our family, to be close again, I still couldn’t bring myself to go back to church regularly. Not after everything that had happened.

On her way home, Trish had picked up The Philadelphia Inquirer. I sat at the kitchen table with her and glanced at the front page. January 20, 2008. The presidential primaries were in full swing; the country was in a recession.

My concerns were closer to home. A year earlier, I’d moved back in, after being separated from Trish for five years. I was grateful to be home again, but there still seemed to be a barrier between me and my wife and our children. After all we’d been through—all I’d put them through—I wanted to put the past behind us. How else would we be able to move on with our lives?

일요일이었다. 늘 그렇듯이 내 아내 트리시는 나 없이 혼자 주일 예배에 갔다. 우리의 결혼생활이, 그리고 우리 가족이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겪은 일들로 인해 냉담 중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트리시가 신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를 사 왔다. 아내와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아서 신문의 1면을 힐끗 쳐다보았다. 2008년 1월 20일자 신문이었다. 대통령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

사실 나는 그런 것보다 우리 집 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1년 전에 우리 부부는 5년간의 별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살림을 합쳤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아이들 사이에는 여전히 장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 가족이 겪은 모든 일, 정확히 말하면 나로 인해 겪게 된 그 일들을 이제는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우리 가족이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번역 김보경

--- 이후 내용은 2017년 8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