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17


Finding a Path


Just because a divorce is final doesn’t mean you find closure


스미듯이, 용서

이혼은 결혼의 마침표이지, 인생의 마침표는 아니다.

니키 쿠퍼 텍사스 주 플래이노

Mike and I sat side by side in the only two chairs in the hospital’s pre-op room, our arms almost brushing. We hadn’t been this close to each other in four years. Not since he’d left me and our marriage had come to a bitter end.
A guy with a laptop on a rolling cart came in and asked some questions about insurance. “There’s a hundred-dollar co-pay,” he said.
“Can you split it?” I asked as Mike and I each reached for our credit cards. We didn’t share anything anymore. Not finances. Not a bed or a home or a life. All we had in common now were our 11-year-old boys—Breckan, who was fidgeting in his hospital gown, and his twin brother, Brennan.
“Sure,” the guy said, taking both of our cards.
It wasn’t lost on me that 16 years ago to the day Mike and I had been in Hawaii on our honeymoon, snorkeling, hiking, eating shave ice. I’d dwelled on it every November since our divorce, my stomach tightening at the memory of what we’d had between us and how it was now gone.

마이크와 나는 병원 수술 대기실 안에 놓여 있는 단 두 개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팔이 닿을 듯 말듯했다. 지난 4년간 이렇게 가까이 있어 본 적이 없던 우리였다. 남편이 집에서 나가면서 결혼이 파탄 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한 남자가 노트북을 실은 카트를 끌고 들어와 보험에 관한 질문을 시작했다.
“보험 적용하면 100달러 나오네요.”
그가 말했다.
“혹시 둘로 나눠서 결제 가능한가요?”
마이크와 나는 각자 신용카드를 꺼냈다. 더 이상 우리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분을 비롯해 침대며 집이며 삶, 그 어떤 것도. 그와 내가 공유하는 것이라고는 열한 살짜리 두 아들이 전부였다. 병원복을 입고서 쉴 새없이 꼼지락거리고 있는 브레칸과 그의 쌍둥이 형 브레난이 우리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네, 가능합니다.”
남자는 우리가 내민 카드 두 장을 받으며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6년 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서 함께 스노클링도 하고 하이킹도 하고 빙수도 먹었던 일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혼한 후로도 매년 11월이면 그때의 추억에 잠기곤 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린 우리 둘 사이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위가 꼬이는 듯 아팠다.

번역 김보경

--- 이후 내용은 2017년 9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