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FOOD

'빅마마'가 돌아왔다!


Guideposts 2022 | 05


COMFORT FOOD

Guideposts 2022 | 05

'빅마마'가 돌아왔다!


After her husband died, she never thought she’d cook again. 

Little did she know what God had in store

남편이 세상을 뜬 후 다시 요리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바는 알지 못했다. 


By BRENDA GANTT, Andalusia, Alabama

브렌다 갠트  앨라배마주 안달루시아 





I’ve been cooking my entire life, starting with helping my mother and grandmothers. I’ve loved watching my family, friends and my husband, George, enjoy good, homecooked meals. Gathering around our wooden table—bonding, laughing and, of course, eating—was such a huge part of our relationship. But when George got sick, I stopped much of my cooking. Then he passed away just a month after our fiftieth anniversary. What does the Lord have in mind for me now? I wondered.

George and I had met in 1965 at a small Alabama college. I first saw him while looking out my dorm window. He was wearing a Hawaiian shirt and cutoffs. I thought he was just darling!

We married in 1968. I was so excited to cook my first meal as Mrs. George Gantt that I forgot to wash the dirt off the turnip greens. Those greens turned out so gritty, we had to pour them out. George just laughed. That was his way. If I put it on the table, he happily ate it.

The kitchen was the heart of our home. George and I and our son, Dallas, and daughter, Hannah, would join hands and take turns saying grace at meals. When a good song started playing on the radio, George would grab me and we’d dance around the kitchen. Our song was “Unchained Melody.” In their teens, our children would groan and say, “What are y’all doing?” Even as grandparents, we still danced in the kitchen.

George loved my biscuits and gravy. Naturally, when we organized a fundraiser at our church, Bethany Baptist, biscuits were on the menu. I must have made 900 of them that night. “Miss Brenda,” people said, “these biscuits are amazing!” I was already famous for the chicken and dumplings I made for fellowship meals, but now everyone wanted to know my secret for biscuits. What secret? I thought. I just used simple ingredients and an old can to cut the biscuits. Several young men offered to pay me to teach a cooking class for their wives. I was flattered but busy with my own family.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돕기 시작하면서부터 평생 요리를 해왔다. 가족, 친구, 남편 조지가 훌륭한 가정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나무 식탁에 모이는 일‒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웃고 당연히 먹기도 하면서‒은 우리 관계에서 아주 큰 부분이었다. 하지만 조지가 아프면서 요리를 거의 그만뒀다. 조지는 결혼 50주년 꼭 한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주님께서는 날 위해 무엇을 염두에 두셨을까? 알고 싶었다. 

조지와 나는 1965년에 앨라배마의 작은 대학교에서 만났다. 기숙사 창밖을 내다보다가 처음 그를 보았다. 그는 하와이안 셔츠에 컷오프(청바지 등을 무릎 위에서 잘라 가장자리를 풀어헤친 반바지‒역주) 차림이었다.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1968년에 결혼했다. 조지 갠트의 아내로서 첫 끼를 요리하게 되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순무의 어린 잎에서 흙을 씻어 내는 일을 깜박했다. 잎이 너무 껄껄해서 쏟아 버려야 했다. 남편은 그저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내가 식탁에 올리면 그는 기쁘게 먹었다. 

부엌은 우리 집의 중심이었다. 조지, 나, 아들 댈러스, 딸 해나는 손을 맞잡고 번갈아 가며 식전 감사 기도를 올렸다.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조지는 날 붙잡았고 우리는 부엌에서 춤췄다. 우리가 좋아한 노래는 ‘언체인드 멜로디’였다. 십대가 된 아이들이 불평을했다.

“뭐 하세요?”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엌에서 춤췄다. 

조지는 내가 만든 비스킷과 그레이비(육류를 철판에 구울 때 생기는 국물에 후추, 소금, 캐러멜 따위를 넣어 조미한 소스‒역주)를 아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다니는 베서니 침례교회 모금 행사를 주최할 때 비스킷이 메뉴에 올랐다. 그날 밤 족히 비스킷 900개를 만들었을 거다. 

“브렌다 씨, 이 비스킷은 놀라워요!”

사람들이 말했다. 나는 이미 친목 모임 식사 자리에서 만든 치킨 앤드 덤플링(덤플링은 밀가루 등을 반죽하고 고기, 버섯, 새우 등의 소를 넣어 만두처럼 빚은 음식, 치킨 앤드 덤플링은 닭고기와 닭 육수로 익힌 덤플링으로 만든 수프‒역주)으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모든 이가 비스킷의 비법을 알고 싶어 했다. 무슨 비법이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저 단순한 재료를 쓰고 오래된 깡통으로 비스킷을 잘랐다. 젊은 남자 몇이 아내들을 위한 요리 교실에서 가르쳐 달라며 내게 돈을 치르겠다고 제안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우리 가족 일만으로도 바빴다.  



Busy worrying about George. He was 70 by then. Something was off. It got harder for him to work up lessons for the Sunday school class he’d taught for 30 years. Then he started asking me how to get to places we’d been to hundreds of times. Hannah and I took him to a clinic in Atlanta. George was diagnosed with vascular dementia.

“Brenda, I want you to promise me some things,” George said. “I don’t want you to use the power saw or drive my tractor. Let someone else do that.”

“Okay.” I tried not to cry.

“And don’t ever take ice cream away from me.” Vanilla ice cream was his favorite treat.

“Darling, you’ll have ice cream,” I said. “I promise.”

George began having trouble swallowing, then walking. Soon he couldn’t do anything on his own. Taking care of him became my full-time job. I didn’t have the energy to even think about cooking, so I hired a lady to make our meals.

At the end, George had to go to a nursing home. I insisted on one thing. “I want him to have two of those cups of vanilla ice cream at lunch and two at supper,” I told the director. Within days, George couldn’t eat at all. One day, just 18 months after his diagnosis, we lay cheek to cheek, and as I sang “Amazing Grace” to him, his last breath left him.


남편 걱정으로도 바빴다. 그즈음 그는 일흔 살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남편이 30년 동안 가르친 주일 학교 수업을 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러더니 수백 번이나 갔던 곳에 어떻게 가는지 묻기 시작했다. 딸 해나와 나는 애틀랜타에 있는 병원으로 조지를 데려갔다.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브렌다, 몇 가지 약속을 해주면 좋겠어요. 당신이 전기톱을 사용하거나 트랙터를 운전하지 않았으면 해요. 다른 사람한테 시켜요.” 

“알았어요.”

나는 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내게서 아이스크림은 뺏아 가지 말아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별미였다. 

“여보, 당신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예요. 내가 약속할게요.” 

조지는 삼키는 데 문제가 생겼고 그다음에는 걷는 게 어려워졌다. 곧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돌보는 일이 내가 종일 하는 일이 되었다. 요리 생각을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끼니를 챙겨 줄 사람을 고용했다. 

결국 조지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한 가지를 끈질기게 고집했다. 

“남편이 점심과 저녁 때 각각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 컵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관리자에게 말했다. 며칠 내로 남편은 아무것도 못 먹게 되었다. 치매 진단을 받고 딱 1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뺨을 맞대고 누웠다. 나는 그에게 ‘놀라운 은총’을 불러 주었고, 마지막 숨결이 그를 떠났다.

Our church did a big meal for our family after the funeral. So many people expressed how they loved George. But when that was over, I was left with an aching emptiness.

Lord, I asked, will it ever stop hurting? The more I prayed, the more I came to accept that I would never stop missing George. But my grief was proportional to the great love he and I shared, a love that had been a gift from God.

One day, I thought about George faithfully teaching Sunday School for 30 years. It was part of his service to the Lord. Just as cooking was mine. And I knew that he’d want me to keep cooking and enjoying our family. I called Hannah: “I’ll see y’all here after worship for Sunday lunch.” Big Mama, as the grandkids called me, was back.

Cooking brought me comfort. In the spring of 2020, I decided it was time to share my biscuit recipe. Then the Covid pandemic sent everyone into quarantine, so I made a video. I used my phone to film myself. I cut the biscuits with my old Chef Boyardee can, the same one I’d been using since I first got married.


장례식 후 교회에서 우리 가족을 위한 성대한 식사를 마련해 줬다. 정말 많은 이가 조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쓰라린 공허함과 함께 남겨졌다. 

나는 물었다. 

‘주님, 마음 아픈 게 끝나기는 할까요?’ 

기도할수록 남편을 그리워하는 일을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깨달을 뿐이었다. 나의 깊은 슬픔은 우리 부부가 공유한 큰 사랑,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같던 그 사랑에 비례했다. 

하루는 조지가 30년 동안 한결같이 주일 학교에서 가르치던 일을 떠올렸다. 그건 그가 주님을 돕는 일의 일부였다. 요리가 내 몫이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남편이라면 내가 계속 요리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을 즐기기를 원하리라는 걸 알았다. 딸에게 전화했다. 

“예배 후에 여기서 다 같이 일요일 점심을 먹을 거야.”

손주들이 날 부르는 대로, ‘빅 마마’가 돌아왔다.   

요리가 위안을 주었다. 2020년 봄, 비스킷 조리법을 공유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이가 격리되었기에, 동영상을 만들었다. 핸드폰으로 셀프 촬영을 했다. 낡은 ‘쉐프 보야디(통조림 파스타 제품‒역주)’ 캔으로 비스킷을 잘랐는데, 처음 결혼하고서부터 줄곧 사용해 온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I shared the video on Facebook. That should make the church folks happy, I thought. The next day, a friend called. “Brenda, do you know how many people have seen your video?” I couldn’t believe it: Within days, my shaky video had reached more than a million people! They messaged me: “How do you cook butter beans?” and “How do you cook rice so it’s not sticky?” My son-in-law, Walt, set up a Facebook page called Cooking With Brenda Gantt. Now every week, I’m showing how to cook something else. I published a cookbook this past November, and it sold out before it was even printed! “You’re a viral sensation, Big Mama,” my grandchildren tell me.

Lots of people say I’ve inspired them to start cooking again or that I remind them of good times with their grandmothers, something they sorely needed during the pandemic. I love helping folks learn to cook so they can enjoy meals with their families, and I love talking about Jesus while I’m cooking.

George would be so tickled. More than anyone, he’d understand how glad I am that the Lord gave me a new purpose so that I can wake up every day and say, “It’s going to be good, y’all.”


페이스북으로 동영상을 공유했다. 그걸로 교회 사람들이 기뻐하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친구가 전화했다. 

“브렌다, 네 동영상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지 알아?”

믿을 수 없었다. 며칠 만에 내 어설픈 동영상이 100만 명 이상에게 전해졌다! 사람들은 메시지를 보냈다. 

“리마콩은 어떻게 요리하세요?”

“쌀 요리를 어떻게 하시기에 끈적이지 않죠?”

사위 월트가 ‘브렌다 갠트와 함께하는 요리’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이제는 매주 또 다른 것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보여 준다. 지난 11월에는 요리책을 냈는데, 인쇄되기도 전에 다 팔렸다! 

“입소문으로 선풍적인 관심을 끌고 있어요. 빅 마마.” 

손주들은 말한다.

내가 다시 요리를 시작하는 데 자극이 되었다거나, 할머니와 함께한 좋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고 많은 이가 말했다. 그들이 팬데믹 시기에 오로지 원하던 바다. 사람들이 요리하는 걸 배워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즐기도록 돕는 일이 좋다. 그리고 요리하는 동안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조지도 기뻐할 것이다. 주님께서 내게 새로운 목적을 주셨고 덕분에 매일 일어나서 “괜찮을 거예요, 여러분”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남편은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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