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낯선' 문장들에서 '진심'을 캐요


Guideposts 2022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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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장들에서 '진심'을 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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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비틀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재미 삼아 우리말로 옮겨 본 적이 있다. 이럴 수가. 그 짧은 가사를 번역하는 데도 영 속도가 붙질 않았다. 겨우 완성된 ‘우리말 비틀스’는 번역이 아닌 차라리 반역이었다. 그런데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인 C.S.루이스의 문장이라면 어떨까? 오랜 시간, 루이스의 책을 매해 한두 권씩 번역해 온 성실한 ‘루이스 전문가’가 있다. 바로 가이드포스트가 독서의 계절, 10월의 인물로 선정한 번역가 홍종락 선생이다. 판타지와 문학비평을 넘나들고, 기독교 용어 없이 기독교를 묘사하는 작가가 C.S.루이스라면, 오랜 시간 그의 문장과 함께 씨름해 온 홍종락 번역가와의 만남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말하는 신앙 체험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어요. 제게 교회 생활은 일종의 호흡과 같은 것이었어요. 그저 부모님이 신실한 장로, 권사님이셨고 그분들이 진짜로 믿고 있던 신앙을 자식인 제게도 권해 주신 거였죠. 물론 ‘내가 믿는 이것에 뭔가 특별한 게 있구나’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차원의 뭔가가 있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언어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 동기가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내가 듣고 배운 복음이 옳다’고 가정할 때, 그 내용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겠구나, 그렇다면 그 일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번역가가 된 계기예요.



굉장히 큰 결심을 ‘이것이 진리가 맞다면…’이라는 가정에 두셨네요. 큰 확신에 두신 게 아니라.


지금 생각하면 좀 뜨악한 면이 있긴 해요.(웃음) 물론 당시엔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신앙의 확신이 강하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C.S.루이스가 회심하고 나서 첫 번째로 쓴 책인 『순례자의 귀향』에도 비슷한 예가 나오는데, 인간의 모든 결정이라는 게 아무리 순수했다고 해도 자세히 보면 불순물 같은 뭔가가 섞여 있거든요. 제 선택도 그랬던 거 같아요. 순수했던 마음과 진짜가 아니었던 마음.



너무 솔직하신 거 아닌가요? 말씀을 듣다 보니, 루이스 책의 번역을 맡기 전부터 루이스와 같은 면모가 있으셨던 거 같아요.


친구들에게 배운 바가 큽니다. 저의 대학 생활은 SFC라는 학생 신앙 운동 동아리와 함께했는데요, 그때 선배나 동기들 중의 상당수가 지금도 여전히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 한 친구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여러 해 전, 그 친구는 아파트 주민대표가 되었는데, 예전부터 있어 왔던 부정행위를 모두 없애고 자기 몫의 부당한 수익도 포기한 재 아파트를 정말로 살기 좋게 만드는 데 힘을 쏟았어요. 그러다 전 주민대표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고요. 어떤 삶의 자리라 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신앙 생활하는 친구들, 그들을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는 거 같아요.

결국은 번역가가 되셨어요. 성경은 아니지만.


네. ‘성경 번역가’의 꿈은 대학 생활 중에 접었어요. 성경은 단지 번역만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학교를 졸업하고 해비타트라는 NGO에서 몇 년 일하다가 중간에 나와서 핸드폰 파는 사업을 좀 했어요. 그때 홍성사에서 C.S.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가 나왔어요. 하던 일이 재미가 있던 것도 아니고 번역은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라 루이스의 책을 번역한 분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턱대고 홍성사에 전화를 걸었죠. 그랬더니 번역가의 연락처는 줄 수 없고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와서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찾아갔더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저더러 샘플을 주면서 한번 번역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게 제임스 패커의 『성령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페이지로 10쪽 정도 되는 분량이었던 거 같아요. 집에 와서 바로 번역해서 보냈고, 그렇게 연결이 되어 다른 곳과도 하나 둘 넓어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고 독자들에게는 ‘루이스 번역가’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처음에 홍성사에서 『루이스와 톨킨』이라는 책의 번역 제의가 왔어요. 그때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루이스의 책을 번역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이미 가장 유명하다는 책은 번역된 상태였어요. 하지만 기독교 책 중에 루이스의 말이 인용되지 않은 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보니, 이후로도 매년 루이스의 책이나 루이스 관련 전기들을 번역하게 됐어요. 



루이스의 문장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던가요?


루이스는 번역자에게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측면이 있어요. 번역하다 보면 ‘나쁜 남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 뭔가 진심이 있다는 걸 계속해서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번역할 때도 믿고 갈 수 있어요. 끝까지 가 보면 지금의 고민과 시간이 보상받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원래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빤하게 안 쓰잖아요.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통상적인 신학 용어를 잘 쓰지도 않아요. 그렇다 보니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문장들이 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아니, 나니아 연대기에 이런 말도 있었어?’ 하는 것처럼요. 아마도 이분이 가진 폭넓은 인문학적인 지식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문학적으로 표현되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C.S.루이스는 기독교 변증가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루이스가 한 번 신앙을 버렸다가 성년이 되어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는 가운데 다시 신자가 된 사람이다 보니, 그의 글에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어떤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산에 가면 태종대라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자주 가던 곳이에요. 그런데 다 커서 부모님을 뵐 겸 고향에 내려가 태종대를 방문하게 되면, 진짜 멋지구나라고 감탄하게 돼요. 제가 살았고 친숙한 곳이라 그 진가를 몰라봤던 거죠. 사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낯설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꼭 다른 데 나갔다 오라는 말은 아니에요. 루이스의 글에는 신앙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기독교를 바라본 경험이 녹아 있어요. 그래서 마치 기독교를 처음 접하는 것처럼 새롭게 보게 해주는 면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루이스 글의 매력이 아닌가 해요.

그렇군요.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다시 새롭게.


네. 교회를 다니다 보면 교회에서 쓰는 언어에 익숙해져요. 그러다 보면 그 언어를 구사하는 것만으로 그 실체를 알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죠. 루이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언어가 말하고 싶었던 실체를 확인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게 루이스가 가진 힘이고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의 글에는 상상력과 논리의 조화가 있어요. 판타지처럼 무한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논리적인 성향이 다분하죠. 루이스는 기독교 안에서 이 둘의 조화를 경험했고, 신자가 된 이후 작가로서 그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어요. 물론 통상적이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지나친 상상력은 오히려 해가 된다고 배우는걸요.


루이스에게 있어서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은 다 상상력에서 오는 거였어요. 그는 북구의 신화를 굉장히 좋아했죠. 그러나 합리주의적이고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볼 때 그러한 신화는 진리가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그 둘이 서로 따로 놀게 되는 거죠. 신화 속 상상력은 그에게 기쁨을 주고 의미 있게 다가오지만, 그것은 이성적으로 진실이 아닌 게 되니까요. 하지만 루이스는 기독교 안에서 그 둘이 종합되는 것을 발견했어요. ‘사실이 된 신화’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 둘이 조화를 이룬다고 믿게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문학의 진리와 기독교의 진리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와 기독교의 진리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만난다는 믿음이 분명했어요. 이런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한 문구가 있습니다. “저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습니다. 그것을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단지 세상을 보는 안경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이 세상이 그 자체로 실제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루이스를 처음 알아 가는 사람들, ‘루이스 입문자’들에게 단계별로 세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어떤 책이 있을까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우선 소개하고 싶어요.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대개 이 책을 못 읽는 분들은 없더라고요. 그다음이 『순전한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 책을 읽는 목적에 따라 읽는 순서를 바꾸기를 추천해요. 먼저 ‘내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뭘까’를 생각해 봐야 해요. 만약 내가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1부부터 보면 돼요. 그러나 이미 기독교인인 사람은 1부는 안 봐도 돼요. 1부가 제일 어렵거든요. 그리고 이 책의 백미는 사실 1부가 아니라 4부예요. 



1부가 아니라 4부! 뭔가 중요한 팁을 듣는 거 같아요.


이런 말이 있어요. “『순전한 기독교』에서 한 장만 보고 싶다면 4부 8장을 봐라.” 4부 8장이 그거예요. ‘기독교는 쉬운가, 어려운가’. 그 답은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거예요. 우리가 보통 하나님을 찾을 땐 뭔가 아쉬울 때죠. 루이스의 비유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납세자처럼 대한다는 거예요. 세금 내고 할 거 다했으니 이제 서로 적당히 거리두기 하자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나의 전부라는 것. 이렇게 4부 8장을 보고도 아쉬우면 4부 전체를, 그러고도 모자라면 3부, 2부를 보시고, 그래도 마저 보고 싶을 때 전부를 보시면 돼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책은 『영광의 무게』인데요. 이 책도 다 보기 어려우면 그중 ‘변환’이라는 에세이를 찾아보세요. 루이스의 사고방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 입문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작업하신 수많은 책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항상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가장 최근의 책을 얘기합니다.(웃음) 배우들이 얹는다는 표현을 쓴대요. 대사를 얹었다가 끝나면 털어 버리곤 더 이상 기억이 안 난다는 거죠. 번역도 그런 면이 있어요. 물론 다른 좋은 책들의 내용이 제 안의 어딘가에 있겠지만, 그래도 정직하게 말해서 지금 번역한 책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최근에 나온 책이 두 권인데, 『빛이 드리운 자리』(2022, 비아토르)와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2022, 두란노서원)예요. 전자는 필립 얀시의 회고록인데, 이분이 책에서 이렇게 말해요. “이 책은 내가 쓴 모든 책의 프리퀄”이라고요. 궁금하시죠? 두란노에서 나온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원제가 ‘악당과 성자’예요. 교회사에서 이 둘이 동시에 존재했으며 그것을 드러내는 책이에요. 이 자체로 기독교인들에게 도전이 된다고 봐요. 그러면 너는 어느 편에 서 있느냐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쓴 『오리지널 에필로그』(2019, 홍성사)예요.(웃음) 이 책에는 루이스를 오랜 시간 번역해 오며 역자로서 못다 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루이스를 더 알기 원하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의 기록이자, 이제 막 루이스라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더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입니다.



그동안 번역하신 문장 중에서 각별하게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요?


조지 맥도널드라고, 루이스가 영적 스승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남긴 문장이 있어요. “God is easy to pleased but hard to satisfy.”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는 쉽지만 만족을 드리기는 어렵다는 말이죠. 조지 맥도널드가 한 말이 또 있는데, “어느 아버지가 뒤뚱거리며 처음으로 걸음을 떼는 어린 아들을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장성하여 늠름하게 자기 걸음을 걷기도 전에 만족하겠습니까”예요. 실제로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무 쉽게 만족하시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많은 걸 요구하시는 것 같잖아요. 하나님은 때로 하나님을 지향하는 우리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기뻐하시고 그로 인해 구원을 베풀기 좋아하시지만, 거기에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요즘 코로나를 겪으면서 한동안 대면예배가 어려워지다 보니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자기의 상태에 빠져 있으면 정직하게 말해서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할 수 없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멀어져서 다시는 이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위의 조지 맥도널드의 말처럼, 하나님은 작은 일에도 기뻐하시니까요. 저는 성경 속 인물인 아합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사람은 정말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반역자처럼 살았는데, 어느 한순간 조금 조심하고 풀이 죽으니까,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은혜를 베푸시잖아요. 요나도 니느웨로 가지 않은 이유가, 니느웨 사람이 조금만 회개해도 하나님이 용서하실 줄 알아서였잖아요. 탕자의 비유만 봐도 그렇고요. 그러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금씩이라도 움직임을 펴게 되면 거기서부터 길은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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